아라가야 600년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말이산고분군을 소개하는 전시관이다.
말이산고분군의 무덤 변천과정과 축조방법 등을 소개하고 있으며, 디지털 실감 영상관에서는 화려한 영상과 음향이 어우러진 미디어아트를 구현하여 아라가야 문화를 더욱 친숙하게 접할 수 있다.
말이산고분군
말이산고분군은 아라가야의 왕과 귀족들의 묘역으로, 아라가야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한 함안의 대표적인 고대 유적이다. ‘말이산(末伊山)’은 순우리말인 ‘마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우두머리’라는 의미이다. 즉 ‘말이산’은 ‘왕의 무덤이 있는 산’을 의미한다. 현재까지 봉토가 확인되는 것은 160여기이며 면 적이 약 80만㎡나 되어 국내 최대급 규모를 자랑한다.
말이산고분군은 김해 대성동고분군, 고령 지산동고분군, 합천 옥전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고분군, 고성 송학동고분군,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과 함께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말이산고분군(동말이산)
말이산고분군에 대한 기록은 선조 20년(1587)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가 편찬한 『함주지(咸州誌)』에서 확인된다. 아라가야가 멸망하고 1,000여 년이 지나도록 말이산고분군이 가야 왕릉이라는 인식이 이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함주지
일제장점기 말이산고분군은 일본의 조선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한 대상으로 수난을 겪게 된다. 1914년 말이산 1호분을 시작으로 4호분, 25호분, 13호분, 12호분이 발굴되었지만 역사성 규명 보다는 일제의 식민지 문화정책을 선전하는 것과 유물 수집에 치중되어 가야사 규명을 위한 많은 고고학적 자료를 망실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조선총독부는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존령을 제정(1933)하고 행정 구역에 따라 말이산고분군을 조적 제118호 도항리고분군과 제119호 말산리고분군으로 분리지정(1940)한다.


한국전쟁 이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1962)됨에 따라 말이산고분군은 사적 제84호 도항리고분군과 제85호 말산리고분군으로 지정(1963)되었다. 이후 가야문화권 학술조사(1981)와 가야문화권 정밀조사(1982)를 거쳐 가야문화권 중요유적에 대한 학술조사 및 보존사업(1992~1996)을 계기로 말이산고분군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연구와 정비가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30여 차례에 걸친 조사 결과 만점이 넘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최근 고분군의 원래 이름인 ‘말이산’을 되찾자는 지역민의 뜻을 모야 행정구역에 따라 분리지정된 두 고분군을 말이산고분군으로 통합하여 사적 제515호로 재지정(2011)되었고, 같은 유적으로 인식한 『함주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던 ‘남문외고분군’을 말이산고분군으로 확대지정(2021)하여 지금의 규모를 가지게 되었다.
말이산고분군의 무덤 변천
널무덤(木棺墓)
땅에 구덩이를 파고 시신이 안치된 나무널을 묻는 무덤으로 영남지역에서 기원전 1세기경부터 기원후 2세기 무렵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널무덤은 구릉의 경사면 아래나 평지에 만들며 그 규모는 구덩이 크기를 기준으로 길이 3m 내외, 폭 1m 정도이다. 널(棺)은 통나무나 판재를 사용하였다. 널 속에는 구슬, 팔찌, 부채 등을 넣고 토기, 철기, 칠기 등은 널 밖에 둔다.

덧널무덤(木槨墓)
덧널무덤은 나무널과 껴묻거리를 보호하는 덧널을 설치한 무덤으로, 넓은 구덩이를 판 후 바닥을 고르고 점토를 바른 후 자갈돌은 1~2겹 골고루 쌓아 바닥 시설(시상)을 만들었고, 중앙에 관이 놓이는 자리는 자갈돌을 2~3겹 더 쌓았다. 널과 덧널의 사이공간에 유물을 놓았으며, 널무덤에 비해 껴묻거리의 종류와 수량이 많다. 구덩이와 덧널 사이는 점토와 흙으로 채워 덧널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했으며, 판재로 덧널을 덮고 점토로 틈을 메워 밀봉한 후 봉문을 만들었다.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
5세기 중엽 대형봉토의 등장과 함께 나타나는 구덩식돌덧널무덤은 대형화된 봉분의 하중을 지탱하기 위해 나무덧널을 돌덧널과 덮개돌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말이산고분군의 대형봉토분은 대부분 이 형태를 채택하고 있다. 아라가야 구덩식돌덧널무덤은 다음과 같은 독창적인 특징이 있다.

들보시설
지질학적으로 약한 함안지역 암석의 약점으로 인한 무덤 붕괴를 막기 위해 거대한 덮개돌을 떠받치는 ‘들보’라는 목가구(木架構)시설을 설치하여 거대한 봉분을 지탱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암반대 조성
쉽게 부스러지는 말이산 기반암의 특징을 활용하여 흙을 쌓는 대신 상대적으로 높은 곳을 선정하여 암반을 깎아 거대한 고분의 아랫부분을 조성해서 적은 힘으로 고분을 더욱 크게 보이게 하였다.

3분할 공간구성
아라가야 구덩식돌덧널무덤의 내부는 모두 3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가운데 무덤 주인의 공간을 중심으로 머리 위쪽에는 껴묻거리를 두는 유물부장공간이, 발 아래에는 순장자 공간이 위치한다.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
굴식돌방무덤은 돌로 벽과 천장을 쌓아 무덤방(玄室)을 마련한 지상식 구조의 무덤으로, 한쪽 벽면에 통로인 널길(羨道)을 만들어 놓아 시신을 추가로 매장할 수 있는 무덤이다.
아라가야 굴식돌방무덤은 서말이산(남문외고분군)에서 처음 시작되었는데, 굴식돌방무덤의 수용과 더불어 아라가야의 중심 묘역이 동말이산에서 서말이산으로 이동한 것을 보여준다.
굴식돌방무덤은 무덤방과 널길, 무덤길, 둘레돌, 제단 등을 갖추고 있으며, 무덤의 축조방식과 껴묻거리를 통해 볼 때 고구려, 신라, 백제 등 당시 아라가야의 대외관계를 유추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실감영상관
디지털 실감영상관은 프로젝션 맵핑을 활용한 실감영상관으로 아라가야 유물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미디어아트에 접목하였다. 온몸을 감싸는 초대형 영상과 3면에 펼쳐지는 파노라마의 체험은 강력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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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지 담당자
- 문화유산담당관 박물관담당 ( ☎ 055-580-3901 )
- 최종수정일
- 2024.10.29 17:4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