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Haman 여닫기 TOP
HamAn TODAY
# 현재 시각 금요일 오후 02:56 2019/05/24

오늘의 날씨

맑음
20190524 32.8 맑음
습도 : 26%
강수확률 : 0%

지명유래

원구성(元龜城)

칠원읍 구성리 원구성마을

원구성은 현재 칠원읍의 중심부이며, 옛 읍성이 있었던 곳으로 성(城)이 거북같이 생겼다하여 광해9년에 구성 또는 무릉(武陵)이라했고 동명(洞名)도 성명(城名)을 따서 원구성이라 했다.

용산(龍頭山 : 龍山)

칠원읍 용산리

용산동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용두산은 본래는 산이 아니었다고 전한다. 고려때 이 마을에 널리 알려진 구두쇠인 부자(富者)가 살고 있었는데 남편을 밭일, 아내는 베틀에서 베를 짜며 지냈다. 어느날 늙은 스님이 시주를 청하였으나 거절하고, 며칠 후 또 다시 그 스님이 공양시주를 청하자 스님의 바랑속에 거름을 퍼 부었다. 거름을 받은 스님은 공손이 합장 배례하며 당신네 집안은 이제 오래지 않아 망할 것이요 하고 사라졌다.

노승이 사라지고 얼마되지 않아 그때까지 쾌청했던 하늘에서 벼락이 치면서 억수같은 비가 쏟아지니 무릉산이 삽시간에 내린 비로 붕괴되어 부자가 살던 고래등 같은 기와집은 흙속에 잠겨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에 용두(龍頭)모양의 뫼(山)가 생겨나 그 이름을 용두산(龍頭山)이라 불렀다.

지금도 여름에 폭우가 쏟아지면 베짜는 소리가 들린다고 전하여 용산동이란 마을 이름도 이 유래를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유원(柳原)

칠원읍 유원리

유원들은 옛날에 버드나무가 많았던 까닭으로 버드나무 유(柳)자와 근본원(原)자를 따서 유원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유상(柳上), 유하(柳下)로 분동(分洞)되었지만 유원동은 풍수지리학적(風水地理學的)으로 배설(배說)이라하여 무거운 집 짓기를 꺼려한다. 이 마을은 동서남으로 개울이 흐르고, 북으로만 산을 등지고 있어 마을 형상이 배같이 생겼다하여 지어진 것이다. 배에 과도하게 짐을 실으면 배가 가라앉듯 기와집같은 짐이 많이 실리는 집을 짓게되면 몇해 안가서 집안이 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은 전기와 전화가 들어와 골목마다 전주가 세워져 있는데 이것은 배의 돛대와 같다하여 마을이 더욱 번창한다고 한다.

달전(達田)

칠원읍 유원리 달전마을

달전마을이 형성된 시기는 확실치는 않으나, 전(田)씨의 성을 가진 자가 제일 먼저 들어와 살면서 이름 지어진 것으로 전한다. 당초에는 동네 뒷산이 반달같이 생겨 달(月)자를 따고 성씨의 전(田)을 따서 달밭(月田)이라고 불리워졌다가, 강(姜氏)들이 입주한 후부터 동명(洞名)을 놓고 의논 끝에 마을둘레가 산으로 쌓여있고 온 마을의 단결과 성취를 위하여 달전(達田)으로 고쳤다고 전한다.

장암(藏岩)

칠원읍 장암리 장암마을, 동암마을

장암이란 본래 바위가 많아 "바위의 보고"란 뜻이고, 동암 역시 "동편에 있는 바위 창고"라고 해서 지어졌다고 한다.

오곡(梧谷)

칠원읍 오곡리

오곡은 대구행 구마고속도로 좌측 부곡동과 유원사이에 있는 마을로서 오리골이라고 한다.

마을의 형태가 오리의 형상을 닮았다는데서 유래하며, 마을 가운데에 있는 조그만 연못이 오리의 숨구멍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서을 뚦으면 재앙이 따른다하여 주위를 막아 놓았고 그 위치를 아는 사람은 없다. 마을의 대소(大小)에 따라 큰 오리동, 작은 오리동 두 마을로 나뉘어져 있다.

가메(마)실(釜谷)

칠원읍 오곡리 부곡마을

가메(마)실은 오곡동 상부에 위치한 마을로서,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부봉산의 모양이 가마솥같이 생겨 가메실이라 불리어졌다. 산맥이 동서로 청룡백호가 소쿠리의 테와 같이 뻗어 내린 그 중앙 상봉이 산신령이 산중하시는 곳으로 그 말미에 위치한 촌(村)이 바로 가메실(釜谷)이다.

여시골(狐谷)

칠원읍 오곡리 호곡마을

여시골은 부곡 위에 위치하며, 부곡동에 속해 있다가 87년 분동된 마을로서 옛부터 여시골이라 불렀다. 이 마을의 전체적인 형상을 보면 남쪽의 산모양은 꼭 여시(여우)같이 생겼고, 동쪽에는 시체를 염하여 놓은 것과 같이 생긴 산이 있다.

석전(石田)

칠원읍 용정리 석전마을

석전동은 칠원에서 마산으로 가는 국도 옆인 신마산전력소가 있는 곳으로 약 150여년 전에 이루어진 마을로 삼산봉(三山峰)과 이룡소(二龍沼), 칠성암(七星岩)이 있다. 동네 앞에 있는 조그마한 산봉우리가 삼산봉이고, 이룡소는 현재 용소보(龍沼洑)를 말한다. 또한 석전의 끝부분에 10여호의 자연부락이 있는데 이 마을이 구석(龜石)이다. 이 구석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뒷산이 거북처럼 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양정(陽亭)

칠원읍 용정리 양정마을

칠원읍 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약 1km 쯤 가다보면 왼쪽에 이룬 마을이 양정마을로, 예부터 버드나무가 우거지고 정자가 많아 양정이라 했으며, 샘(井)이 귀하다. 그것은 이 마을에서는 옛날부터 샘을 파면 나병환자가 생긴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기 때문이다.

무기(氣沂)

칠원읍 무기리 무기마을

옛고을 칠원현에 주산인 청룡산(작대산)밑에 자리잡아 물맑고 산세좋아 고을에 무우기수(舞雩沂水)에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라하여 판결사 주선원공(周善元公)이 무기라고 지명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돈담(敦淡)

칠원읍 무기리 돈담마을

돈담은 무기동 윗마을로서 돌이 많고 물이 맑아 돌담(石談)이라고 부르다가 언제부터인지 돈담으로 부르게 되었다.

산정(山亭)

칠원읍 무기리 산정마을

산정(山亭)은 돈담 윗마을로 작대산(爵大山) 골짜기에 위치하는 산골마을이다.

옛날 용이 살다가 승천한 자리를 용지굴이라 한다.

칠원현에서 날씨가 가물면 용지굴 앞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꼭 온다고 전해져 마을 이름을 용골(龍谷)이라 하였다.

용지골(龍地谷)

용지골은 산정(山亭)저수지 수문(水門)이 있는 그 옆쪽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다. 이 굴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굴로 용이 살다가 승천하였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굴이라기 보다는 골짜기로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 곳에 고인물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고,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전하지만 조그만 소(沼)같은게 있을 뿐이다. 이 용지굴은 일제시 일본인들은 은(銀)을 캐었다고 하여 "은굴"이라 부리기도 한다.

작대산(爵大山)과 무릉산(武陵山)

칠원읍 운곡리, 무기리

칠원읍 무기리에서 칠북면 영동리까지 뻗어 있고, 창원시(昌原市) 북면(北面)과 경계 짓는 산을 작대산이라 하는데 주봉은 687m이다. 작대산은 청룡산 또는 천주산이라고도 불렀다.

천지개벽 당시 온 천지가 물에 잠겼을때 이 산은 작대기만큼 남았다고 하여 작대산이 되었고, 무릉산(武陵山)은 물레정도가 남아 물레산이라고 했다가 무릉산으로 고쳐 불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대산과 무릉산 사이에 높이 약 400m의 배넘이 고개가 있어 천지개벽때 배가 넘나들었다고 해서 「배넘이고개」 또는 「배나무고개」라고 부른다.

장수방폭포(長水房瀑布)

운곡리 덕암동 골짜기를 장수방골(長水房谷)이라 하며 이 골짜기 너머에 장수방 폭포가 있다. 눈병을 앓는 사람은 아픈 눌을 이 벼락수(瀑布水)에 맞으면 낫는다고 하여 10개월동안 이곳에 초막을 짓고 살았던 사람도 있었다고 전하는데 조선 숙종때의 명필가(名筆家)인 허미수(許尾?) 선생의 소게처(所憩處)로도 유명하다. 또한 무기리 무기동 뒤산 중턱에 절이 있었다고 하나 간혹 와편(瓦片)만 발견될 뿐 유래나 규모는 알 길이 없고, 다만 칠원읍지의 불우조(佛宇條)에 「墨寺一云中興寺又云神興庵白石嫌於邑基故墨其石改名墨寺在靑龍山」으로 되어 있어 유명사찰로 추측할 뿐이다.

학동(鶴洞)

칠원읍 운서리 학동마을

학동은 칠원읍소재지에서 북동쪽으로 약 2km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서, 장춘사로 가는 길목의 왼쪽 하천변에 위치하는 마을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400여년전에 형성된 학동마을은 옛날에는 목학동이라 불렀다. 그것은 마을 중앙에 있는 연못 주위에 소나무가 우거져 학(鶴)이 많이 날아와 연못에서 목욕을 하며 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죽청(竹淸)

칠원읍 운서리 운서(죽청)마을

죽청마을은 칠원읍 소재지에서 북동쪽으로 약1km 떨어진 운서리 운서동의 자연부락으로 198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칠북면에서 칠원읍으로 편이되었다. 이 마을은 칠원윤씨 윤순무 란 분이 임진 왜란때 피난을 가셨다가 돌아오면서 죽근(竹根) 한 뿌리를 가져와 운곡천변에 심었다는데서 비롯되어 앞 냇가에 맑은 물이 흐르므로 대(竹)와 맑은 물(淸)을 붙여 죽청이라 지었다고 한다.

기산(沂山)

칠원읍 운서리 운서(기산)마을

기산마을도 죽청마을과 같이 칠북면에서 1983년 칠원읍에 편입된 마을로서 지금으로부터 약 350여년 전 경주김씨 중시조 되시는 김광억 이란 분이 운서리 양촌 마을에 살다가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시자 삼년시묘를 위하여 선조들의 묘소가 있는 기산마을에 정착하면서부터 이루어진 마을이다.

김광억의 호가 기산(沂山)이어서 그의 호를 따서 지었다고도 하고, 또한 작대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보고 물줄기(沂)와 뫼(山)를 따서 기산(沂山)이라고 더 많이 불리워지며 이 기산마을에는 경주 김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다.

운동(雲東)

칠원읍 운곡리 운동마을

칠원읍 운곡리 운동마을은 지금으로부터 2백여년 전에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나무들이 무성하게 숲을 이루어 지나가는 길손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선비들이 과거길에 오를 때면 으레 이곳에 여장을 풀고 숲의 절경에 감탄하며 한수 시를 읊고 떠났기 때문에 서울 장안에까지 유명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도사 한분이 이곳을 지나다가 우거진 숲너머로 흰구름이 두둥실 떠있고 찬란한 햇빛이 스며드는 것을 보고 구름운(雲)자에 동녘동(東)자로 이름지어 오늘날까지 운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덕암(德岩)

칠원읍 운곡리 덕암마을

덕암마을은 학동 뒷편에 위치한 윗동네이며, 읍소재지로부터 북동쪽으로 약2.5km 지점에 있다. 198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칠북면에서 칠원읍에 편입된 마을이다.

마을 뒷편 산에 바위가 매우 많아 악바위라 하였고, 그것을 방치해 두면 마을이 불길하다고 믿어 뜻으로 재앙을 물리치고자 악바위를 '덕이 큰 바위'로 의미를 바꾸기 위하여 큰 덕(德)자와 바위암(岩) 자를 따서 마을이름을 덕암(德岩)이라 했다.

무산(武山), 소목

칠원읍 운곡리 덕암(무산)마을

무산마을은 덕암동의 자연마을로서 소목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것을 마을 앞산이 소(牛)의 목과 같이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무산은 지금으로부터 약 400여년 전에 마을을 이루었다고 하며 당초에는 마을입구에 당(堂)을 쌓았다고 한다. 당을 쌓은 동기는 확실치 않으나, 당시 못된 중이 이곳을 지나가다가 동네 사람에게 붙잡히게 되자 이 동네에 부자(富者)가 나올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줄것이니 살려달라고 애원하므로 의논 끝에 중을 놓아 주었고, 그 비법이란것이 마을 앞에 당을 마을 뒷쪽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처음 있었던 당의 자리는 소의 목처럼 생기지 않았으나 당(堂)을 옮기고 보니 소의 목처럼 생겼다고 하여 소목이라 불렀다.


담당부서 :
칠원읍 총무담당
전화번호 :
( ☎ 055-580-3751 )
만족도 조사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시나요?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