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밝은 별을 꿈꾸며 불굴의 기업가 정신으로 조국 근대화의 기틀을 다진 효성그룹 창업자 만우 조홍제 회장이 태어난 집
1906년 5월 20일, 한국경제 발전을 이끈 만우(晩愚) 조홍제(1906~1984) 회장께서 태어난 생가입니다.
이 생가는 만우회장의 5대 선조부터 터를 닦아왔으며, 조선 후기의 한옥으로 실용적인 건물 배치, 장식을 배제한 담백함이 특징입니다.
마을 인근에는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이 흐르고, 뒤편으로는 백이산과 숙제봉이 둘러서 있어, 예전부터 좋은 터라 불리우고 있습니다.
생가는 대지면, 별채, 사랑채, 광채, 안채 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구성은 다른 고택들과 유사하지만, 다른 점이 있습니다.
산기슭에 기대어 위치하지 않고 들판 가운데 위치하여 이동거리를 줄이는 한편 대문채 밖에 큰 마당을 두어 작업의 효율을 높였습니다.
또한 우물과 광채는 숨어 있지 않고 안마당과 가까이 하여 사용이 편리하도록 하였습니다.
단순한 농사가 아닌, 농업 경영을 하신 것이 건물에서 나타납니다.
○만우조홍제
만우 조홍제 회장은 부친 용돈 공과 모친 순흥 안씨 부봉 여사의 맏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22년부터 서울로 유학한 회장은 1926년 6·10 만세 운동의 주모자로 옥고를 치뤘고, 고향으로 돌아와 1936년 군북 금융조합의 조합장으로 피선,
동조합의 3선 조합장으로서 면내 자작농을 육성하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1948년 호암 이병철 선생과 동업하여 삼성물산을 세웠고, 제일모직, 제일제당 등의 회사를 설립해 키움으로써 오늘날 삼성그룹의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이후 독자 사업을 모색하던 회장은 1966년 동양나이론을 설립하고, 이를 발전시켜 오늘날 효성그룹, 한국타이어그룹 등 세계적인 기업들을 만들어 내는 위업을 이루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