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학자 주재성(周宰成) 선생 (1681~1743)
신재 주세붕의 방손(傍孫)인 주재성(周宰成, 1681~1743) 선생은 칠원 무기사람으로 조선후기 학자이며 의병장이었다. 자는 성재(聖哉), 호는 국담(菊潭). 본관은 상주(尙州)였다. 어릴 때부터 비범하였으며 자신의 영달을 좇지 않고 오직 몸과 마음을 닦고 학업수양에 전념했다. 1728년 영조 4년 이인좌, 정희량이 난을 일으키자 의병을 세워 낙동강을 건너 대구에 이르매 관찰사 황준이 크게 기뻐하면서 김해 7읍의 군졸 3천을 주어 영호남의 요새인 분치령을 방어케 하였다. 전쟁 중 군량미가 부족하자 가산을 털어 군졸을 먹이니 사기충천하여 역적 정희량 등을 섬멸하고 난을 평정했다.
이에 군졸들이 국담공(菊潭公)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돌아오는 길에 공의 정원에 작은 연못을 파고 고기를 방사(放飼)하여 산수지락(山水之樂)을 누리게 하였는데 「菊潭」이라 명명한 이 연못은 1984년 12월 24일 중요민속자료 제208호로 지정되었다. 나라에서 긴히 중용하려 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오직 성현의 학문탐구에 전력하였으며 후진양성에 힘썼다. 선생이 돌아가신 3년 뒤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의 벼슬이 내려졌고 1783년 영남유생의 상소에 따라 정여(旌閭)가 내렸다.
선생의 문집을 후손들이 모아 1848년 현종때 담원집 2권과 부록 2권을 목재에 양면 판각한 국담문집책판이 전해오고 있으며 1985년 1월 14일 도 유형문화재 제242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칠원읍 무기리 966번지 내 주재성의 생가에 있는 무기연당은 비교적 원래의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연못으로 정원문화 연구에 좋은 자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