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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려

생육신 조려 (1420~1489)

1420년(세종2)에서 1489(성종20)년까지의 사람으로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이다. 자는 주옹(主翁)이고, 호는 어계은자(漁溪隱者)이다. 함안(咸安)사람으로 태어나서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인품이 출중하여 두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사람마다 훌륭하게 될 그릇이라고 칭찬이 자자하였다. 글공부에 남달리 힘쓰고 그 공부의 요령이 대의를 통투(通透)하는데 힘쓰고 헛되게 뜻모르고 암송하는 버릇을 따르지 않았으며,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따서 짓는 모방적인 습성을 배격하였다.

1453년(단종1)에 성균관 진사시험에 합격하였다가 당시 학계의 유종(儒宗)으로 이름높은 형조판서 김 종직(金宗直)의 시험관 밑에 응시하여 장래가 촉망되었으나 세조가 왕위를 찬탈(簒奪)하자 그 불의(不義)에 항거하였다. 조 려(趙旅)는 어느날 문생(文生)과 작별하고 함안(咸安)에 돌아온 후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두문불출(杜門不出)하고 말았는데 그의 시문(詩文)에도 김 시습의 시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사리를 뜯어 먹으면서 은둔생활(隱遁生活)을 하겠다는 의미의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1455(단종3)에 왕위선양이 있은 후로는 스스로 어계처사(漁溪處士)라 하고 산수간에 상양하면서 살았다. 그리하여 그는 백이산(伯夷山)과 약간 떨어져 있는 정암산(鼎岩山) 부근에다 몸담을 데를 만들어 놓고 독서와 낚시로 여생을 보내었다.

이조 정조 5년(1781)에 이르러 정조는 그의 정충(精忠)과 고절(高節)에 감격하여 그에게 이조판서란 벼슬과 정절공(靖節公)이란 시호(諡號)를 내려 그의 충혼(忠魂)과 의백(義魄)을 위로하였다.

그런데 세조는 단종을 강봉(降封)하여 노산군으로 한 후 그를 강원도 영월에 안치해 놓고 청령포에서 배타는 것까지 엄금하였는데 이것은 영월과의 교통을 두절시키기 위함이었다.

1699년(숙종25)에 단종의 왕위가 복위되자 이조참판을 추증(追贈)하고 백이산(伯夷山)아래에 사당을 건립하여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배향되었다. 이 사당을 서산학원(西山學院)이라 사호(賜號)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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