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정승을 지낸 충효공 윤환(尹桓) (?~1386)
본관은 칠원(漆原)이며 시호는 충효(忠孝)공이다. 고려말기의 대신으로 출생연월일은 알 수 없으나 충의공 길보(吉甫)의 아들로서 충혜, 충숙, 충목, 충정, 공민, 우왕조에 벼슬에 나아가 세 번 정승을 지낸 후 1386년에 돌아가셨다.
충숙왕때 무관을 호군(護軍)이 되었고 충혜왕 때 대언(代言)을 지냈다. 1332년(충숙왕 복위1)충숙왕이 원나라에 있으면서 복위할 때 일어난 당옥(黨獄)에 연루되어, 해도(海島)에 유배되었으나 원나라로 망명했다.
1340년 충혜왕이 복위되자 동지밀직사가 되어 조정에 들어갔으며, 원나라로부터 행성원외랑(行省員外郞)의 관직을 받았다. 또 조적의 난 때 충혜왕을 시종한 공으로, 1342년 수성양절보리공신(輸誠亮節甫理功臣)에 책록되고, 1349년(충정왕 1) 칠원부원군(漆原府院君)에 봉해졌다.
1354년(공민왕 3) 찬성사(贊成事), 1356년 좌정승을 지냈으며 1360년 칠원후(漆原侯)의 작위을 받았다. 문하시중에 올랐다가 한 때 귀양을 갔으며 뒤에 칠원백(漆原伯)의 봉작을 받고 1371년 다시 문하시중이 되어 감춘추관사를 겸임했다. 우왕 때인 1380년 다시 문하시중에 올랐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일찌기 칠원으로 돌아가기를 청하여 유동(柳洞)에 살았다. 그 해에 큰 흉년이 들어서 사람이 서로 잡아먹을 형편이었다. 환이 자기의 재물을 흩어서 구제하고 가난한 백성이 꾸어간 재물에 대한 문서를 모두 불살라버렸다. 그 때 한창 가물었는데 환의 밭에서 갑자기 물이 솟아나서 남의 밭까지 젖어들어 큰 풍년이 들었다. 이에 경상도 백성이 칭송해 마지않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