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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령선생

조선 후기의 의병장 이령(李伶) 선생 (1541~1592)

이령 선생은 1541년(중종 36년)함안군 가야읍 검암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조선후기 의병장이었다. 자는 여윤(汝允), 호는 충순당(忠順堂), 본관은 성산(星山)으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장성하여 갈천선생(葛川先生)밑에서 수학하여 성리학에 정통하였으며 자신의 영달을 좇지 않고 오직 몸과 마음을 닦고 학업수양에 전념하였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년 4월 공이 52세 때 왜적이 동래성에 침입하여 위급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 100여 명을 모집하여 백의종군(白衣從軍)으로 김해진(金海鎭)으로 달려가 주장 서예원에게 소속되었다.

공의 사람됨과 충성심, 정열의 웅장함을 보고 성의 요새인 동문장(東門將)을 맡아 지키게 했다. 많은 적을 참사하고 여러 번 격퇴했으나 동래성이 함락되자 김해 부사는 군민과 더불어 도주하면서 퇴각했다가 후일을 도모하고자 하였으나 선생은 「나의 신조가 충의(忠義)를 준수하여 왔거늘 어찌 국가의 존망을 목전에 두고 일신만을 생각하고 퇴각할 수 있겠는가?」하고는 결사보국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함께 참전한 둘째 아들에게 피묻은 적삼을 벗어 주면서 장차 이것으로 장사 지내라 하고 군병을 독려하여 분전하였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전사하게 되니 김해읍성이 함락되었다. 전쟁 후 시신(屍身)을 찾지 못하여 아들에게 맡긴 피묻은 적삼을 놓고 초혼장(招魂葬)을 지냈는데 선생의 묘소는 함안면 대산리 동지산(冬只山)에 있다. 나라에서는 곧 복호(復戶;군역 및 요역면제)를 명하고 고종 6년(1869년)에 영남 사림의 제청으로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1880년 통훈대부사헌부감찰(通訓大夫司憲府監察), 을유(1885년)년에는 통정대부이조참의(通政大夫吏曹參議)에 증직되었다. 1980년 정부에서 사적비(事蹟碑)를 세우고 별묘(別廟), 묘소(墓所)등을 보수하였다.

가야읍 검암리 상검마을 뒷산 기슭에 충순당(忠順堂) 건물과 이령(李伶)의 사당이 남아 있다. 충순당은 단층 팔작목조와가(單層八作木造瓦家)이며 이령 사당은 단층 맛배목조와가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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