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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세겸

탁월한 문장력과 담력으로 외교에 성공한 문정공 어세겸 (1430~1500)

공의 자는 자익(子益), 호는 서천(西川), 시호는 문정(文貞)으로 조선 전기의 대유(大儒)였던 문효공(文孝公) 효첨의 장남이다.

1430년 산인면 내인리에서 태어났으며 1456년 동생 세공과 함께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1459년 이문학관(吏文學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이에 문명이 드러나 1467년에 우승지에 이르렀다. 1469년 강순·남이의 역모를 주살한 공으로 추충정난익대공신(推忠定難翊戴功臣)에 책봉되고 함종군(咸從君)에 봉해졌다.

1479년 명나라가 여진족을 토벌하면서 원군을 요청하여 처음 윤필상이 출정하여 승첩을 거두었으나 그 다음에 출병한 어유소는 만포진에서 강물이 얼기를 기다렸으나 군량이 다하여 돌아오고 말았다. 이에 곤란한 지경에 처한 조정에서 공을 명나라에 파견하였으며 요동에 이르러 비범한 지혜로 담판했다. 또 명의 조정에서도 당당하게 우리의 주장을 개진하여 명의 성조가 마장표피(馬裝豹皮)를 하사하는 등 큰 외교적 성과를 거뒀으며 귀국할 때 <오륜서(五倫書)>, <국자감통지(國子監通志)> 등 귀중한 책을 들여왔다.

이후 호·형·공·병 4조의 판서와 춘추관사(春秋館事), 홍문관대제학(弘文館大提學), 지성균관사(知成均館事)등을 역임했으며 1495년 우의정, 이듬해에 좌의정에 올랐으나 1498년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벼슬을 떠났다가 1500년에 돌아가셨다.

공이 병들었을 때 내의가 뜸을 해야 한다고 하자 "인생 칠십이면 희수(稀壽)요 정승은 극품(極品)인데 두 가지를 모두 얻었거늘 무엇을 바라 뜸까지 하며 더 살고자 하겠느냐."하며 거절했다고 한다.

공은 문무를 겸비하고 학식이 뛰어났으며 형조판서로 있을 때는 출퇴근 시간에 구애되지 않아서 오고당상(午鼓堂上)이라 불리었으나 능률적이어서 업무가 지체되지 않았다고 한다. 무궁화를 즐겨 시제(詩題)로 사용했으며 700여수의 명구가 현재까지 전한다.

1483년 서거정 등과 함께 <연주시격(聯珠詩格)>, <황산곡시집(黃山谷詩集)>을 한글로 번역했으며 1490년에는 임원준과 함께 <쌍화점(雙花店)>, <이상곡(履霜曲)>, <북전(北殿)>의 악사(樂詞)를 개찬(改撰)했고 1492년 유자광 등과 <진법(陣法)>을 편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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