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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인

은덕군자로 칭송받은 박제인(朴齊仁) (1536~1618)

선생의 본관은 경주, 자는 중사(仲思), 호는 황암(篁巖)이며 박앙(朴?)의 5세손으로 1536년 지금의 군북면 명관리에서 태어났다.

경주박씨의 중시조인 박앙은 신라의 제5대 왕인 파사왕의 37세손으로 조선 세종 정묘년에 시마시에 합격하고 문종 신미년에 문과에 급제해 홍문관 저작을 지냈으나 단종이 폐위되자 벼슬을 버리고 매월당 김시습, 찬성 유자미와 함께 수양산에 은거했으며 만년에 명관리에 정착해 절의를 지켰다.

이런 가풍을 이어받아 선생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었고 남명 조식에게 경의(敬義)의 요체를 가르침 받으면서 문하의 인물들과 교우했다. 거처하는 집을 정묵재(靜?齋)에서 정적(靜寂)으로 바꾸고 바위 위에 대를 심은 다음 스스로 호를 황암으로 고치고 학문에 정진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종도, 이칭, 이정 등과 함께 군사를 모아 함안군수인 류숭인에게 보내기도 했다.

남명의 사상을 철저히 이어받아 행한 학자로 평가받았으며 함안군수로 부임한 한강 정구(寒岡 鄭逑)가 학문의 침중함에 감복해 은덕유조(隱德有操)라 칭할 정도였다. 또 조식선생도 형(兄)인 송암 박제현(松巖 朴齊賢)과 황암의 재주에 감탄하여 「함안의 고사는 난형난제다.」라고 했다.

이칭, 이정 등과 함께 함주지를 편찬해 지역역사에 발자취를 남겼으며 이괄의 난을 평정해 진무공신으로 인원군에 봉해진 생질 이휴복을 가르치는 등 교육에도 많은 관심을 쏟았다. 선조대왕에게 어필(御筆)과 어화(御畵) 1점을 하사받기도 했다.

학덕이 널리 알려져 1594년 태릉참봉(泰陵參奉)과 왕자의 사부(師傅)로 임명되었으나 모두 거절하고 나아가지 않았으며 1599년 송라찰방(松羅察訪)이 되었다가 1601년에 사직하고 1602년에 다시 시직(侍直)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그해 겨울 다시 왕자의 사부로 임명되어 부임하니 임금이 밝은 스승을 얻었다고 기뻐했다. 1605년 형조좌랑에 임명되고 군위현감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이후 제용감판관(濟用監判官)으로 제수됐으나 나아가지 않고 있다 1618년 돌아가셨다.

도림서원에서 향사하다가 조선 헌종 때 명관리 평천서원으로 이봉(移奉)했다. 선생이 남긴 황암집은 가로 20cm, 세로 31.5cm로 당초 41매였으나 6.25전쟁으로 39매만 남아있으며 평천서원 유허지에 세워진 추모재(追慕齋)에 보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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