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화가 이우환 (1936~ )
이우환(李禹煥)선생은 1936년 군북면 명관리 222번지(평광마을 구식골)에서 태어나 군북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면소재지인 덕대리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경남중학교에 다니면서 그 당시 문인으로 활동했던 황동초(黃東樵) 선생으로부터 詩,書,畵를 배웠으며 서울사대부고교 재학 중일 때 수필가로 이름난 피천득(皮千得) 옹을 가까이서 접하며 자라 후일 문학에도 깊은 조예를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선생은 서울대 미대 동양화를 전공으로 학업에 열중하던 중 동양화에 회의를 느껴 미대 진학 3개월 만인 1956년에 서울대 미대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61년 일본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했다. 그 후 45년여, 그는 동양사상으로 현대미술의 한계를 뛰어넘은 세계적 화가로 우뚝 서게 된다.
우리 지역에서는 선생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한민국의 미술계 거장으로서의 명성을 넘어 세계적인 작가로 널리 알려졌으며 이우환(71ㆍ일본 다마미술대 교수)이라는 이름보다 'LEE U FAN'이라는 이름으로 국제 화단에 더 통하는 '그리지 않는 그림'의 철학자로 일본과 유럽을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선생은 글로벌 시대 화가로 파리 에콜 드 보잘 초빙교수를 지냈으며, 1973년부터 동경 다마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선', '점', '바람' 등 미니얼하면서도 사색적인 그의 작품은 박수근, 김환기, 이중섭 등 작고 작가를 제외하고는 국내 경매 시장에서 상종가를 치는 이른바 '블루칩'이다. 선생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자 미술품 전문 경매회사인 서울옥션이 7월 12일 평창동 사옥에서 가진 107회 경매에서 그의 작품인 '점으로(2점 일괄)부터'가 국내 경매 사상 최고가인 13억 5,000만 원(이하 구매 수수료 제외)에 낙찰됐으며 지난 5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8억 원에 낙찰된 것만 보더라도 상한가를 달리고 있는 그의 작품에 대한 미술시장의 인기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선생은 자신의 작품이 경매시장에 오르내리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진정 그림에 대한 제대로 된 감상과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봐 주기를 바라는 진정한 그림쟁이 화가 이우환, 그는 어디에서건 '화가는 그림으로 생각하는 지식인'임을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그의 고향인 평광 숲에는 고향과 수구초심을 그리며 쓴 그의 작품이 반기고 있다.
고향이 하 보고파 양졸숲 찾아 왔더니
풀국새 우는 소리 깨닫는 바 또 있구나
부끄러워 꿈 쫓아 다시 먼길 떠나노라-
- 1987년 청명절에 우환이 귀성 시를 애비 인섭이 새기다.
2000년 11월 일본에서 초판이 나온 그의 작품인 '여백의 예술'에는 예술은 시며 비평이고 그리고 초월적인 것이기에 두 가지 길이 있다고 하는데 첫 번째는 자기의 내면적인 이미지를 현실화하는 길이며, 두 번째는 자기의 내면적인 생각과 외부 현실을 짜 엮는 길이며, 세 번째는 일상의 현실을 그대로 재생산하는 길이지만 거기에는 암시도 비약도 없기 때문에 자신은 그것을 예술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이 선택한 것은 두 번째의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길이다 거기에는 자신이 만드는 부분을 한정하고 만들지 않은 부분을 받아들임으로써 서로 침투하기도 하고 거절하기도 한 다이내믹한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고, 또한 이 관계 작용에 의해 시적이며, 비평적이며 그리고 초월적인 공간이 열리기를 바란다고 하였으며, 그리고 바로 이것을 여백의 예술이라 부른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 여백의 예술 중에서 -
이우환 선생은 함안 아니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다. 한국 '안과 밖' 양쪽에서 예술적 성가를 공인받고 있는 화가나 조각가로 이우환을 꼽는 데 이견을 달리할 사람이 없을 정도라니….
그러나 우리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 너무 많은 걸 잊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부끄럽기만 하다. 먹기에만 급급했을까? 정작 우리보다 국외적으로 함안을 빛나게 했던 세계적인 거물을 잘 몰랐다니 말이다. 지금이라도 선생의 혼이 담긴 작품세계에 빠져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