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가야읍 말산리, 검암리, 도항리, 가야리, 산서리 일원으로 한밭들을 비롯한 둘안 일부 중심지를 일컫는 곳으로 옛날에는 가야를 대칭(代稱)한 지명이기도 했다.
방목(放牧)이란 지명(地名)으로 함주지(咸州誌)에 방목촌(放牧村)이란 동명(洞名)과 수우방목(水牛放牧)이란 것이있고, 시장조(市場條)에도 방목시장(放牧市場)이라 하였다. 방목은 제방축조 이후 옥토를 이루었으나 그 이전에는 저습지여서 홍수 때마다 물이 범람하는 초생지였다고 하며, 해방직후에도 홍수로 한밭들이 물에 잠기어 본동과 중검간에 배를 타고 건넜다고 전한다.
방목이란 글자 그대로 가축을 놓아 먹이는 곳으로 옛날 문암(門岩: 산인)에서 소가 뛰쳐나와 방목에서 풀을 먹고 지금의 돈산동에서 똥을 누었다는데, 이곳을 돈데미 또는 똥뫼(소똥의 산)라고 불렀고 물을 먹기 위해 소바구(丑岩)로 갔다고 전한다.
지금의 가야읍 도항리 원동과 충무동의 경계지점이며 가야초등학교 후문 방축과 1004호선인 지방도와 만나는 곳을 방목고개라 한다. 옛날에는 고개 아래(군북방향) 낮은 곳을 새터굶티라 불렀고, 이곳에 우시장(牛市場)이 있었으나 현위치로 옮겨가고 지금은 주택지가 되었다. 고개마루에는 「반공전승의 터」란 조그만 비석이 고개를 지키고 있었으나 소도읍 가꾸기 사업으로 도로가 확장 되면서 함주교옆 소공원으로 이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