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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암(儉岩)

가야읍 검암리

검암은 마산에서 지방도를 통하여 들어오는 가야읍의 관문으로서 고려시대부터 불려왔으며 한자만 변해 처음에는 「黔岩」이라 했으며 다시 「鈐岩」이라 하다가 지금은 「儉岩」으로 쓰고 있다.

신정(新亭)

지금의 중검을 옛날에는 신정이라 하였는데 이는 박완천당(朴浣川堂)을 추모하기 위해 인근 주민들이 정자를 지어주었기 때문이다.

방학정(妨鶴亭)

중검동 안산(뒷산)에 위치하며 정자나 누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옛날 그 곳에 여러 마리의 학이 날아와 때를 지어 놀았다고 하여 방학정 또는 고학정이라고 부르던 것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은하수(銀河水)

중검동앞 하천을 일컬어 부르는 이름으로 옛날 이곳에 은어가 많이 잡혔다고 전해지는데 그 물고기의 이름을 따서 은하수라 했다고 전해지며 지금도 물이 맑아 은어가 잡힌다.

공가골(孔哥谷)

공가골은 지금의 검암리 중검동을 지칭한 것으로 옛날 이곳에 공씨(孔氏)들이 씨족을 이루고 살고 있어 인근 주민들로부터 조선 말기까지 공가골(孔哥谷)로 불리어져 왔다고 한다.

네거리(四街里) : 가야읍 검암리 광복동

네거리(四街里)란 지금의 가야읍 광복동(光復洞)을 말하며 당초는 검암리(儉岩里) 하검동(下儉洞)이었다. 6.25 사변직후 함안천(咸安川)을 경계하여 하검에서 분동(分洞)된 마을로서 경전선철도 북쪽을 네거리, 남쪽을 새 동네 또는 새터(新基)라 불렀고, 이 두 자연마을을 광복동이라 했다. 네거리란 지방도(地方道) 1004호선과 중검동(中儉洞) 간(間)의 도로가 교차되면서 사거리를 이루기 때문이며, 가야읍 하검동과 산이면 학산동 경계에도 사거리를 이루는데 이곳은 안네거리(內四街里)라고 부른다. 그러나 대산선이 뚜렷한 삼거리를 형성하고 부터는 이곳을 안네거리라기보다는 산인 삼거리(山仁三街里) 또는 학삼 삼거리(鶴山三街里)로 더욱 알려져 있다.

또한 광복(光復)이란 동명(洞名)은 6.25를 전후하여 마을마다 몇 명씩의 좌익분자(빨갱이)가 있게 마련이었으나 유독 이곳은 사상범(思想犯)이 전무(全無)하여 경찰서에서도 네거리 거주민의 신원만은 보장해 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범죄 없고 좌익 없는 밝고 깨끗한 축복받은 마을, 또한 우리의 광복과 더불어 새로 태어나 길이길이 영광된 마을이란 뜻에서 광복동(光復洞)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삼각지(三角地) : 가야읍 검암리

삼각지(三角地)란 글자 그대로 삼각형(三角形)으로 생긴 땅으로 입곡천(入谷川), 함안천(咸安川), 신음천(新音川)이 만나는 사이에 생겨난 넓지않은 들판이다. 함안공설운동장(咸安公設運動場) 너머에 있는 삼각지는 남해안고속도로가 중앙을 관통하는 관계로 둘로 나누어져 낮은 북쪽을 아래삼각지(下三角地) 높은 남쪽을 윗삼각지(上三角地)라 부르고, 아래 삼각지 끝에는 분뇨종말처리장이 있다. 삼각지는 하천바닥보다 낮아 조그만 강우에도 수침되기가 일쑤이며 특히 아래 삼각지는 제대로 벼농사를 짓기가 어려운 곳이다. 뿐만 아니라 물길(水路)이 멀고 사질토여서 "달밤에 한 논두렁의 물을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누수가 심한 지대여서 삼각지의 모내기가 끝나면 가야읍의 모내기가 끝나는 셈이며 시가지와 가깝고 교통이 좋아 특수재배가 잘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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