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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데미산

군북면 오곡리

상데미는 오곡동의 일명당(日明堂)과 콩밭골부락 앞산으로 이 산 정상에 서면 함안군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데 동편으로는 함안면 파수리 미산이 되고, 미산재(眉山嶺)를 넘어면 창원군 진전면 산서리 둔덕(屯德)이 된다. 서편 역시 이 산허리를 굽이굽이 돌아 둔덕으로 통하는 산복도로가 있어 창원군 진전면 - 진양군 - 진주 등 서부 경남으로 이어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된다.

상데미와 동남으로 마주보는 철산(鐵山)은 여항산(艅航山) - 필봉(筆峯) - 서북산(西北山) - 야반산(夜半山) - 진동(鎭東) - 마산(馬山)으로 이어져 이 산은 6·25 당시 작전상 요충지로서 산정(山頂)에는 그 때에 파놓은 방호진지가 지금도 뚜렷한다.

661고지로 알려진 이 곳을 탈환하기 위하여 피아간 막대한 희생을 감수하면서 19번이나 빼앗고 빼앗기는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던 관계로 이 산은 후에 중머리산, 전투산(戰鬪山) 갓뎀산(God Clamn mountain)이란 불명예스런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중머리산이란 격렬한 포격으로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없는 황토산으로 변했기 때문이기, 갓뎀산이란 생지옥을 방불케한 당시의 현실을 저주하여 미군(美軍)들이 지어부른 이름이다.

미산재는 상데미산과 철산 사이에 있는 고개로서 지아래(미산쪽으로 ) 남근(男根)같이 생긴 바위가 우뚝 솟아 있어 이름 아들바위라 하며 아들을 못 낳는 사람이 길위에서 돌을 던져 바위위에 올려 놓게 되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일반인들은 그 날의 재수를 점쳐보기 위해 돌을 던져 놓기도 한다.

상데미 동편을 삼태양지라 하는데 옛날에 이 곳에 빈대가 많아 망했다는 사찰이 있었다고하나 그 흔적은 찾을 길이 없다. 또한 의상대 골짜기 끝 좌편 삼태양지 아래엔 매산이바구(위)라 불리우는 암벽이 의상대 약수인 가이 상수원과 마주보고 있다. 그의 유래는 알수 없지만 그 바위 아래에서 조금 크게 이야기해도 메아리가 되어 옆에서 되받아 말하듯 또렷하게 들려온다. 이뿐 아니라 이 산에는 농바위(籠岩), 피바위(血岩), 버린바위, 상여바위(喪輿岩)등 기암 절벽이 산재해 있어 경치가 수려하고 가을 단풍 또한 일품이다.

피바구(血岩)

피바위

피바구(血岩)는 상데미 남쪽(원효암 뒷산) 1km 떨어진 써리봉에 위치하는 깍아지는 암벽으로 암벽 군데군데에 피가 흘러내린 흔적과 같은 붉은 반점과 슬픈 사연이 서려 있다.

옛날 오곡 마을에 대단히 아름다운 처녀가 살았다. 이 처녀의 자태가 너무나 아름다워 인근 총각들의 사모의 대상이 되었으나 처녀의 마음에 두는 총각은 한 사람도 없었다. 세월이 속절없이 흘러 혼기(婚期)가 지나려하자 마음이 초조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둥근 달이 상데미 산 위에 얼굴을 내밀던 초여름날밤 처년는 집 앞에서 달을 바라보며 저달 만큼 잘생기고 씩씩한 백마의 기사가 자신 앞에 나타나주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하고 있을 때 홀연히 미남청년이 처녀 앞에 나타났다.

청년은 오래전부터 처녀를 사모해왔노라고 고백하며 유혹하니 처녀는 그만 총각에게 혼이 빠져 버렸다. 그리하여 산책길에 오른 두 청춘 남녀는 달밝은 밤에 시간 가는줄 모르고 사랑을 속삭이다보니 어느새 피바위까지 오게 되었고 달은 벌써 서쪽 쇠단산 너머로 숨바꼭질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총각의 품에 안겨 미래의 단 꿈에 빠져있던 처녀는 답답하고 싸늘함에 정신을 차려보니 커다란 구렁이가 자신을 감고 있지 아니한가, 깜짝 놀란 처녀는 두려움에 떨며 필사의 몸부림으로 빠져 나오려하자 구렁이는 다시 총각으로 변신하여 수년동안 그대를 사모한 나머지 사람으로 변하여 사랑을 고백하게 된것이니 자신의 애틋한 사랑을 저버리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랑이니 단꿈이니 하는 것은 이미 저만치 가버린 지금 두려움과 비탄에 북받힌 처녀가 냉정히 거절하자 화가 난 총각은 처녀를 강간하려 하였다. 이어 강간하려는 총각과 당하지 않으려는 처녀의 치열한 사투가 피바위 위에서 벌어지게 되었다.

날이 밝자 처녀가 행방불명이 된 것을 안 부모와 동네사람들이 온 산을 찾아 헤메다가 이 바위에 이르니 처녀와 구렁이가 유혈이 낭자한채 이미 죽어 있었다 한다. 이를 피가 암벽을 타고 흘러 굳어진후 비바람이나 풍화작용에도 그 흔적이 없어지지 않아 이후부터 이 바위를 피바위(血岩)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와골(瓦谷)

오곡동 일명당 뒤편에 와골(瓦谷)이라 불리우는 조그만 골짜기가 있는데 이곳을 이 지방 사람들은 왜골이라고 부르지만 와골이 와전된 듯하다. 와골은 옛날에 기와를 굽던 곳으로 숯과 와편(瓦片)이 곳곳이 흩어져 있고 당시의 기화편도 남아 있다. 일명당 위에 콩밭골과 골마을(谷村) 사이에 400년 쯤으로 추정되는 당산나무가 있으며 이 곳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에 돼지를 잡아 정성껏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동신제"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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