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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광(平廣)

군북면 명관리

군북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2km 들어가면 사방이 큰 산맥으로 둘러샇인 마을이 하나 있고 이 마을을 평광(平廣)이라하며 여기서 1km 정도 더 들어가면 명동(明洞)이라는 마을이 있다. 이 두개의 마을을 합쳐서 명관리(明館里)라 칭한다.

이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7백년전 고려 공민왕때 이루어 졌다. 원래는 평관(平館)이던 것을 1586년 한강 정구(鄭逑)군수가 평광리(平廣里)로 개칭했고, 뒤에 명관리로 개명하였다. 자연 마을은 장안동(장안동), 지현동(知見洞), 모영동(毛榮洞), 명지동(明知洞), 사리동(沙里洞)의 5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다.

5백년전 성종때 남하한 경상도사(慶尙都事) 이게운(李啓耘)선생이 이 곳 평광에 복지(卜地)를 정하고 동구에 수천 주(株)의 나무를 심어 울창하게 하고 『백이산지(伯夷山地)에 금구몰니(金龜沒泥)하니 여조선(與朝鮮)으로 오자손(五子孫)이 망(亡)』이라는 비결(秘訣)을 전하였다고 한다. 그 후 성지도사(聖知道士)가 함안면 파수리 배다치(拜多峙)고개에서 멀리 평광(平廣)마을을 바라보면서 크게 치하(致賀)하고 세 번 절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산세와 지형이 너무나 아름다워 등등가장(嶝嶝可欌)이요, 곡곡가거(谷谷可居)니 즉, 고관대작(高官大爵)과 충효열사(忠孝烈士)가 끊이지 않을 곳이나 단, 건국(乾局)이라서 부불가백석(富不可百石)이라고 예언을 하였다한다.

동(東)으로는 백이산(佰夷山) 영봉(靈峰)이 웅거(雄據)하였고, 서쪽으로는 건지산(乾支山)이 수구(水口)를 하고, 남으로는 오봉산(五峯山)이 병풍처럼 둘렀고, 북으로는 양졸(養拙) 숲이 가로누워 삼재불인지지(三災不人之地)라고 전한다.

평광 마을에서 명동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함안에서 두 번째로 큰 저수지가 있다. 1977년에 완공된 이 저수지는 만수 97만톤으로서 산과 산 사이의 계곡을 막은것으로서 잉어 낚시터로도 유명하여 태공(太公)들의 행열이 줄을 잇는다.

유목(乳木)

평관마을 입구(入口)인 건지산(乾支山) 밑에 500년의 연륜을 간직한 커다란 느티나무 하나가 있다. 이 나무의 이름은 유목(乳木) 또는 절부목(節婦木)이라고 부른다.

임진왜란 때 마을 사람들이 건지산에서 피난(避難)을 하던 중물이 먹고 싶어 냇가로 내려오던 한 처녀가 왜적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왜적은 그 처녀를 나무에 매달고 주민들의 피난처를 대라고 갖은 악형을 가했으나 끝내 말하지 않으므로 대검으로 처녀의 유방을 도려내어 모창히 살해 하였다. 그로부터 나무의 양편에 흡사 사람의 유방과 같은 혹이 생겨 거기서 하얀물이 흐르므로 유목(乳木)이라고 불리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절부목(節婦木)이라는 말은 나무에 묶인 채 왜적의 가혹한 고문에도 끝까지 굽히지 아니하고 순절한 처녀의 절개를 기리기 위하여 절부목이라 부르게된 것이라고 한다.

하마석(下馬石)

하마석(下馬石)은 절부목(節婦木) 위길 옆에 방치되어 있는데 두꺼운 적색돌에 「下馬石」이라고만 새겨 놓았다. 이 돌비(石碑)는 조선조때 직장(直長)을 지낸 이계운(李啓耘)선생이 세운 것으로 오일덕(吳一德), 조려(趙旅), 하형산(河荊山), 하옥(河沃), 이교(李郊), 박제현(朴齊賢), 박제인(朴齊仁), 이휴복(李休復)등 이 곳 출신 8선생을 기록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전하며, 고관대작이라 할 지라도 이 마을에 들어서서는 반드시 말에서 내려 걸어서 마을을 지났다고 한다. 하마석 옆에는 「8선생 태생지」라는 비문이 있고, 또한 이곳에는 도천서원(道川書院)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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