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柳峴)은 군북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5km정도 떨어진 남해고속도로 너머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에는 1개리(里) 1개동(洞)으로 되어 있었으나 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유현(柳峴)과 봉덕(鳳德)으로 분동(分洞) 되었다.
유현(柳峴)은 민등(民登), 유전(柳田), 신촌(新村), 평촌(平村)의 4개 자연부락으로 형성된 마을로 예부터 저습지여서 버나무가 무성하였을 뿐아니라 들어오는 곳에 조그만 고개(峴)가 있었던 관계로 유현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민등(民登)은 고갯마루에 자리를 잡아 백성들이 오순도순 정답게 모여 살았고, 유전(柳田)은 늪지 옆에 위치하여 버드나무밭이 많았으며 신촌(新村)은 한때 유전동에 큰 불이 나 화재에 집을 잃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사와서 새동네를 이루었던 관계로 각각의 부락 명칭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유현초등학교에서 조금 안으로 들어가면 신총동이 바라보이는 입구에 느티나무 하나가 서 있고, 그 옆에 길이 1m 정도 되는 돌이 세워져 있다. 이 돌은 일종의 망부석으로 총각돌이라 부른다.
옛날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던 선비와 신촌동(新村洞)에 있는 목화밭에서 목화를 따고 있던 아리따운 아가씨가 서로 첫눈에 반해 사모하게 되었다. 백년해로를 기약하고 선비는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떠났다 과거일이 지나고 해를 넘겨도 선비는 돌아오지 않으니 처녀는 기다림에 지쳐서 그 곳에서 망부석이 되었다. 그 후 선비는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하게 되고 처녀의 아리따운 모습을 그리며 이 곳에 당도하였으나 이미 때는 늦어 아름답던 처녀의 모습은 간곳이 없고 싸늘한 망부석으로 변해있지 아니한가. 선비 또한 후회와 애모의 정에 사무쳐 그 자리에서 돌로 변하였다고 한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이들의 애틋한 사랑을 중히 여겨 이 돌을 신성시 하여 보호하고 있다 총각돌이 넘어지면 이 지역 사람들에게 피해가 오고 처녀돌이 넘어지면 의령 쪽으로 시집간 여자가 피해를 입는다고 전한다.
봉산(鳳山) 마을에서 동남쪽으로 쳐다보면 삼봉산이 펼쳐져 있고 삼봉산 동북쪽으로 열 두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는 것을 열두당산(拾貳堂山)이라고 부른다. 열 두 당산은 봉산 뒷산인 천제봉[天帝峯 : 224.7m]에서 법수면 윤내리까지 이어져 있으며 덕제(德齊)와 봉산(鳳山) 두마을이 이 산줄기를 타고 남쪽을 향하여 앉아 있다. 이곳은 6·25때는 치열한 격전지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