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북(院北)은 군북면 소재지에서 서남(西南)쪽으로 약 4km떨어져 있는 1개리(里) 1개동(洞)이나 본동(本洞), 태실(台谷), 새절골(新寺谷) 등 3개의 자연마을(自然部落)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이 곳은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어계(魚溪)·조려(趙旅)선생이 살던 곳으로 그와 관련된 것이 많다 사액(賜額)서원인(신)서산서원(西山書院)을 비롯하여 어계고택(魚溪古宅), 조묘(祖廟), 채미정(采薇亭), 풍문루(風聞樓)와 앞산 너머에는 중국의 수양산(首陽山)과 맥락을 같이하는 백이산(伯夷山)이 있고 그 아래에 (구)서산서원(西山書院)이 있다. 그리고 본동 앞으로 흘러내리는 하천(河川)인 원북계(院北溪)를 그의 호를 따서 어계(魚溪)라고 부르기도 한다. 옛날 읍성(邑城)의 서쪽방향 역원(驛院)으로 파수역(巴水驛), 춘곡역(春谷驛)을 거쳐 의령방면으로는 월촌원(月村院)이 있었고, 진양방면으로는 어속원(魚束院)이 있었다. 이 어속원은 현재의 원북역(院北驛) 남쪽 500m 거리 산기슭에 있었다 한다.
원북(院北)이란 동명(洞名)도 이 어속원의 북쪽에 위치하는 까닭에 원(院)의 북(北)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지어진 것이며 함주지(咸州誌)에는 「於束院一名鵲院在郡城二十七里山足里院北村頹?不修」라 하였다.
원북의 새절골(新寺谷)은 본마을(本洞)에서 500m 위쪽에 있는 마을으로 임진왜란 때 밀성박씨가 이곳에 처음으로 정착하여 절을 짓고 살명서부터 조그만 마을을 형성하여 오늘에 이르렀고 태실(台谷)은 본동 남쪽 2km 정도의 오봉산 아래에서 제일 큰 골짜기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