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림(平林)

대산면 평림리

평림(平林)은 면소재지에서 동남간으로 약 1.5km 정도 떨어진 마을으로, 예전에 이 마을 전체가 버드나무의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평숲"으로 지었다가 후에 다시 형림이라 고치게 되었다. 옛날에는 이 마을 집집마다 울타리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한번은 밤에 도둑이 들어 솥을 훔쳐 가다가 숲을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같은 곳을 맴돌다 아침에 잡혔다는 재미있는 애기가 있다. 지금은 담장이 있는데 이것은 1970년대의 새마을 사업의 소산물이라고 한다.

안산(眼山)의 달팽이설

안산은 평림리 취무동 앞에 있는 산으로 모양이 달팽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10년 6월에 이 산의 풍수에 얽힌 비극적인 실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 산 중심부와 정면으로 마주보는 곳에 집이 한 채 있었고, 이 집에는 노무와 4형제가 거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평소에는 정상적이던 이 집의 형제들이 비만 오면 모두 정신이 이상해져 버리는 괴변이 발생하여 마을 주민들이 이 사실을 지관(地官)들에게 의뢰한 결과 앞산의 달팽이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산과 집 사이에는 도랑이 하나 있어 수분이 없으면 못나오던 달팽이가 비만 오면 수분을 흡수하기 위해 나와서 춤을 추게 되어 그때부터 이집의 자식들 모두가 미쳐 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나무를 심어 집 앞을 가려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때 심었던 나무가 자라나 지금은 큰 숲을 이루고 있으며, 그 집은 폐가가 되어 빈 집만이 외로이 서 있다. 또 안산에는 안동 권씨의 묘가 200m 간격으로 두개가 있는데 윗묘에는 개미가 있으나, 아랫 묘에는 개미가 없다고 한다.

고종산(鼓鍾山)

고종산은 평림리 고원마을의 뒷산으로 해발 180m의 부채 모양으로 된 산이다. 이 산에는 신라시대에 건립된 평림사(平林寺)란 대사찰에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는 북과 종을 매일같이 울렸다 하여 고종산(鼓鍾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임진왜란으로 이 사찰은 소실되어 지금은 빈터만 남아 있다. 산 정상에는 큰 고둥 한 쌍이 있어 지세를 바로 잡았다고 하는데 고둥이 살던 웅덩이는 겨우 흔적만 찾을 뿐이다. 또 산꼭대기에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샘이 있었다고 하나 샘의 흔적을 보이지 않는다.

이 산에는 유태암(有胎菴)이란 암자가 있어 아기를 갖지 못하는 아낙네가 백일기도를 드리면 태아를 잉태한다는 전설이 있어 지금도 매년 정초에는 공을 드리려는 사람들이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

고종산에는 특히 돌이 많다 이것은 고려때 몽고군이 침입했을 당시 방귀군이 이 산에 진지를 구축하였고, 침입군은 이산과 마주보는 6km쯤 떨어진 안곡산(安谷山)에 진을 치고 전쟁을 했다 한다. 그 당시 군사들의 무기가 주로 돌뿐이어서 돌이 많이 모인것이라 한다.

평림마을 사람들은 매년 정월 보름날과 9월9일에 고종산에 산신제를 지내는 풍습이 있다.

옛날에는 무당이 점을 쳐서 제판을 뽑았다고 하나 지금은 동네 회의를 거쳐 깨끗한 사람을 선출하여 제관으로 삼는다. 제관이 된 사람은 3개월간 몸을 깨끗이 단장하고 길흉사에 일제 참석하지 않는다. 정월 보름날의 경우는 그 전날 산에 올라가서 새벽에 제사를 지내고 새벽 1시가 지나면 모두 내려 온다고 한다.

한편 제사를 지내라고 말려 놓은 곡식을 참새가 먹으로 산에 노여움을 사서 그 자리에서 죽는다는 애기도 있다.

월포(月浦)

월포는 평림리 중앙동에 속한 자연마을이나 관거에는 면소재지였다.

조선 말기에 문무(文武)를 겸비한 배홍승의 묘를 이곳에 쓴 후부터 이 묘만 보면 마을의 처녀와 과부가 미쳐 나가는 등 해괴한 일이 생겨 묘 주위에다 철조망과 나무를 심어 묘지를 가리웠다고 한다.

월포라 함은 이 마을 뒷산이 둥근 보름달과 같아 달월(月)자를 쓰고, 또 이곳에 전에는 낙동간 하류의 계하(溪河)가 있어서 포(浦)자를 써서 지은 것이나 경지정리로 인해 없어져 버렸다.

옛날의 월포는 물이 고여 있었기 때문에 인가가 없었으나 김치길이란 분이 처름으로 이 마을에 들어와 산기슭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이 분은 갈마산(渴馬山)에서 마산에 이르는 거리를 배로서 무룔로 사람들을 태워 주었고, 또 정신병을 고치는 신통술까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었기 때문에 그를 따르는 자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게 된 것이라 전한다.


담당부서 :
문화유산담당관 문화유산담당
전화번호 :
( ☎ 055-580-2551 )
만족도 조사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시나요?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