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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津洞)과웃개나루(上浦)

칠서면 계내리 진동

진동나루터

유원은 유동(柳洞)으로 더 잘 알려져 있고 창원황씨(昌原黃氏)들의 집성촌이여 유동황가(柳原柳洞黃哥)라는 별칭까지 있다. 유원은 옛날에 버드나무가 많았던 까닭으로 버드나무 유(柳)자와 근본원(原)자를 따서 유원(柳原)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이 마을은 동서남으로 하천이 흐르고 북으로는 뫼(山)를 등지고 있어 마을 형상이 배같이 생겨 풍수지라학적으로 배설(舟說)이라 하여 무거운 집짓기를 무척 꺼려 하였다. 그리하여 배에 무거운 짐을 실어면 배가 가라앉듯이 기와집같이 짐이 많이 실리는 집을 짓게 되면 몇 해 가지 않아 집안이 망한다고 하여 230여호나 되는 가구(家口)중에도 기와집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이 마을에 많이 심겨져 있는 버드나무는 배와 같이 생긴 이 마을을 바람으로부터 보호하는 한편 돛대의 역할을 한다고 전해진다.

구마고속도로 남지 대교에서 서쪽으로 500m에 나루터가 있는 마을이 진동(津洞)이며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건너면 창녕군 남지읍(南旨邑)이 된다. 이 마을은 부동(富洞)으로서 어업(漁業)을 주업으로 하는 가구가 10여호나 되고, 진동의 횟집들은 유명하다. 옛날에는 이곳 나루터를 우질포(于叱浦)또는 상포(上浦)라 하였고, 마을은 무계(武溪)라 했으나 일제시에 무계가 분동(分洞)하여 나룻배 마을이란 뜻에서 진동(津洞)이라 했다. 옛날의 진동은 영남일대의 중심나루였다고 전한다. 칠원읍지(漆原邑誌) 산천조(山川條)와 장시조(場市條)에 「于叱浦一云上浦:★」 또 「★」이라 하였다.

이 나루는 현풍을 경유하여 대구로 잇는 교통의 중심지 여씅ㄹ 뿐만 아니라 중서부 영남의 물자 및 곡식을 강을 따라 배로 실어다가 안동을 거쳐 서울로 보냈는데 한창 번성할 때에는 200여척의 돛단배가 강을 메우듯 분주히 왕래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현대 교통수단에 밀려 장꾼이나 실어나르고 낚시에 이용되는 구실 밖에 못하고, 구마고속도로와 국도 5호선이 옛 나루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옛 장터로는 진동 아래 노거수(정자)가 있는 곳으로 옷감류·곡식류·과일류를 비롯하여 농촌 생필품의 물물교환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당시 남지는 지금처럼 번창하지 않았으나 차츰 번창되자 우질포 5일장을 남지에 유치하려 했으며, 진동쪽에서는 빼앗기지 않으려 했다. 그러던중 함안의 진동과 창년의 남지간에 줄다리기로 결정키로 합의하고 줄다리기를 하였으나 남지에 져 그만 5일장을 빼앗김으로서 영원히 우질포 시장은 사라져버렸다.

제비산(燕山)과 뱀등(蛇嶝)

칠서면 계내리 무계동 뒷산으로 제비가 날아가는 모양(燕飛設)을 한 산이 제비산(燕山)이며, 주세붕(周世鵬)선생의 묘소가 있다. 또 그 산 옆쪽으로 뱀의 형상을 닮은 능선이 있어 멀리서 보면 그 모양이 뱀이 제비를 잡아 먹으려는 모양 같다. 뱀이 제비를 잡아 먹으면 후손이 끊긴다 하여 그 방지를 위해 후손들이 인력으로 제비산과 뱀등 사이에 늪을 만들어 놓았다.

경양대(景釀臺)

경양대(지암담)

유원은 유동(柳洞)으로 더 잘 알려져 있고 창원황씨(昌原黃氏)들의 집성촌이여 유동황가(柳原柳洞黃哥)라는 별칭까지 있다. 유원은 옛날에 버드나무가 많았던 까닭으로 버드나무 유(柳)자와 근본원(原)자를 따서 유원(柳原)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이 마을은 동서남으로 하천이 흐르고 북으로는 뫼(山)를 등지고 있어 마을 형상이 배같이 생겨 풍수지라학적으로 배설(舟說)이라 하여 무거운 집짓기를 무척 꺼려 하였다. 그리하여 배에 무거운 짐을 실어면 배가 가라앉듯이 기와집같이 짐이 많이 실리는 집을 짓게 되면 몇 해 가지 않아 집안이 망한다고 하여 230여호나 되는 가구(家口)중에도 기와집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이 마을에 많이 심겨져 있는 버드나무는 배와 같이 생긴 이 마을을 바람으로부터 보호하는 한편 돛대의 역할을 한다고 전해진다.

칠서면 계내리 진동마을에서 낙동강 상류 서쪽 강변(강변)에 기암절백이 우뚝 솟아 있다. 이 곳이 경양대(景釀臺), 또는 지암담(地岩潭)이다. 이 암벽 밑이 너무나 깊어 옛날에는 명주실 한타래가 다풀릴 정도의 강심(江沈)이었다 한다. 바위 모양이 가위와 같이 생겨 그 귀퉁이에 물이 고여 있는데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가 이 곳을 뛰어 넘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

이 경양대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면서 월주(月柱)를 구경하며 시(詩)를 읊던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인근 마을의 놀이터 였다. 칠원읍지(漆原邑誌) 고적조(古蹟條)에 「景釀臺: 宰于叱浦岸西有岩突起其上平坦如掌可坐十餘人高麗李仁老嘗遊于此李詹詩」라 하였는데 이첨(李詹)의 시는 다음과 같다.

강상추광청차유(江上秋光淸且幽)
원융가일범란주(元戎暇日泛蘭舟)
수여남색사여설(水如藍色沙如雪)
산사병풍주사유(山似屛風酒似油)
석벽수마조모랑(石壁瘦磨朝暮浪)
적성취파고금수(笛聲吹坡古今愁)
차중사사구무결(此中四事俱無缺)
난취하방병촉유(爛醉何妨秉燭遊)
강상(江상)의 가을빛이 맑고 깊숙한데
원융(元戎)이 한가한 날에 배를 탔구나.
물은 쪽빛이요 모래는 눈 같으며
산은 병풍같고 술은 기름 같더라.
석벽은 아침 저녘 물결에 여위도록 깍이웠고
적성(적성)은 고금의 근심을 흩었더라.
이 중에 네 가지 일이 모자람이 없으니
매우 취하여 촛불잡고 노는 것이 어찌 방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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