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면

함안면 소개

함안면 소개

함안면(咸安面)의 전신(前身)은 상리(上里) 전부와 하리(下里)의 일부였다. 상리는 지금의 봉성(鳳城), 강명(康命), 파수리(巴水里) 등지이며 후에 상리면(上里面)이 된다. 당초의 하리는 북촌(北村), 괴산(槐山), 검암(檢岩), 광정(廣井), 말산(末山) 및 도항리(道項里)였으나, 뒤에 동지산(冬只山)과 성산(城山)을 가로질러 산내면(山內面)과 산외면(山外面)으로 분리되면서 여항산 내측인 북촌 대산 괴산리가 산내면이 되고, 그 외측인 검암, 말산, 광정, 도항리 일부를 산외면이라 하였다. 1914년 3월 1일 부⋅군⋅면(府⋅郡⋅面) 통폐합에 따라 상리면과 산내면이 병합(倂合)하여 읍내면(邑內面)으로 개칭(改稱)되고 1918년 다시 함안면(咸安面)으로 고쳐져 오늘에 이른다.

읍내면이라 함은 향교(鄕校)가 위치해 있던 곳을 읍(邑)이라 일컬었다고 하는데, 향교가 소재하는 봉성리 덕암동(德岩洞)이 옛날에는 상리면의 향교동(鄕校洞) 혹은 교동(校洞)으로 불렀다. 또한 함안읍성(咸安邑城)이 면(面) 중심부(中心部)에 위치해 있고 지리적으로는 함안의 진산인 여항산 내측에 속하므로 읍내면(邑內面)이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읍성안(邑城內) 즉 봉성, 북촌을 위치한 중심가를 읍내라고 지칭하고 있다. 함안이란 면명(面名)은 군청 소재지 면으로 군명(郡名)을 따서 지은 것이다.

군소재지(郡所在地)의 변경사항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함주지(咸州誌)는 가야읍 가야리에 고국유지(古國遺址)가 있고, 광정리의 성산산성(城山山城)을 가야국구허(假倻國舊墟)라고 하였다. 신라에 망한 후의 군청소재지는 알려진바 없고, 고려 제6대 성종(成宗) 14년(995년)에 지방제도를 개편 할 때에 함안을 함주(咸州)라 하고 자사(刺史)를 파견하게 된다.

함주시절(咸州時節) 함주도호부청(咸州都護府廳)이 북촌리 백암동의 당산(堂山)아래에 있었다고 전한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선조 14년(1586년) 한강(寒岡) 정구(鄭逑)선생이 군수로 부임하여 풍수지리설에 따라 백암동의 동헌을 불 지르고 봉성동으로 동헌을 옮겼다는 낭설(浪說)이 전해오고 있는데 어찌되었던 고려 때부터 함안면이 군의 소재지가 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러나 1950년 한국동란으로 군 청사가 소실되어 1954년 11월 12일 대통령령(令) 제953호로 군청 소재지를 가야면으로 옮겼다. 군청소재지였던 함성중학교에 동헌의 흔적인 주춧돌이 아직 남아 있다.

상리면이나 산내면 시절의 면소재지는 알려진 바가 없고, 읍내면 때부터 소재지였던 봉성리 1195-2 번지의 목조와가(木造瓦家)이던 면청사(面廳舍)도 한국동란에 전소되어 1955년 목조 시멘트 기와로 149.24㎡(45평)의 새청사를 신축하게 된다. 1986년 5월 20일 북촌리 943번지에 철근 콘크리트 슬라브로 현대식 청사 537.87㎡를 신축 이전하였으며 옛 청사터에는 보건지소가 들어섰다.

1983년 2월 15일 대통령령(令) 제11027호의 행정구역 변경으로 신개동(新開洞)이 신개(新開)와 득성(得城)으로 분동(分洞) 되었고, 1988년 8월 1일 군 조례 제1005호에 의거 봉성동을 봉성리로 북촌동을 북촌리로 개칭되었으며, 1989년 11월에 6개리 22개동에 가구(家口) 1,280호, 인구(人口) 4,435명(남 2,193명, 여 2,242명), 2016년 9월 현재 가구(家口) 1,331호, 인구(人口) 2,561명(남 1,259명, 여 1,302명), 총면적 28,9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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