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인면(山仁面)의 동부(東部)는 지형적(지형적)으로 산으로 둘러싸인 협곡이며, 위치적(位置的)으로는 해안(마산등지)에서 경남중서부(경남중서부)를 통하는 관문이어서 지방도, 고속도가 모두 이 협곡을 통과하고 있고, 주변에 포덕(飽德), 문암(門岩), 동지(冬只), 성점(城岾), 등 산성(山城)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당초의 산인은 안닐(니)대리(安尼大里)와 산법미리(山法彌里)로 나뉘있었고, 1586년 겨울에 정구군수(鄭逑郡守)가 「安尼大」를 「안인(安仁)」으로, 「산법리(山法彌)」를 「산익(山翼)」으로 지명을 고쳤다. 그 후 조선후기에 와서 안인리는 안인면(安仁面), 산익리가 산익면(山翼面)으로 되며 1914년 3월 1일 부곡면(府谷面) 폐합시(廢合時) 두면이 합쳐 산인면(山仁面)이 된다.
「山仁」이란 지명(地名)은 산익면(山翼面)의 「山」자와 안인면(安仁面)의 「仁」자를 따온 것이지만, 본래 산인은 자구산(紫丘山:紫陽山)과 화개산(華蓋山) 아래에 위치한 함안의 관문인 관계로 항시 위험이 내재하고 있어 어진 마음을 갖어 화평을 누리자는 뜻에서 두산(兩山)의 「山」자와 어질「仁」자를 써서 「山仁」이라 명명(名命)했다고 전한다.
동부지역인 산인면은 청사를 모곡리 574-8번지(고려동)에 두고, 모곡(茅谷), 신산(新山), 입곡(入谷) 등 3개리(三個里)를 관할했었고, 서부지역인 안인면은 청사를 내인리 185번지(외동 입구 함안이씨 재실)에 두고 송정(松汀), 내인(內仁), 부봉(釜峰), 운곡(雲谷) 등 4개리를 관할했다. 양면(양면) 합병 후(1914년)에는 현청사지(現廳舍地)인 모곡리 503-1번지로 옮겨지게 된다.
1968년 10월 10일 구청사를 헐고, 그 자리에 현대식 2층 철골조 슬라브의 청사(건평****㎡)를 신축하였으나, 비좁고 낡아 송정리 1019-1에 이전 신축하였으며 2021년 5월 기준 7개리 20개동에 가구 1,497세대, 인구 2,738 (남 1,378, 여 1,360)명 총면적은 37,43㎢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