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문인인 우졸재(迂拙齋) 박한주(朴漢柱) 선생의 공을 기리고자 세운 비로써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 95번지에 소재하고 있다.
박한주(1459~1504)는 김종직의 문인으로 성종 16년(1485) 별시 문과에 감과로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른 뒤 정언(正言), 헌납(獻納)을 거쳐 예천현감(醴泉縣監)으로 나갔다. 연산군때 간관(諫官)이 되어 왕의 실정(失政)을 극간(極諫)하고, 노사신(盧思愼) 임사홍(任士洪)을 탁핵하기도 하였다. 그 후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스스로 청하여 창녕현감으로 내려왔다.
현감으로 있으면서 어진 다스림을 펼쳐 임금이 비단과 교서로서 포상하였다. 연사군 4년 무오사화(1498)가 일어나자 붕당(朋黨)을 지어 국정을 비방하였다는 죄로 평북벽동(平北璧潼) 으로 유배되었고, 갑자사화(1504)로 인해 처형 당하였다.
중종반정 후에 억울한 죄명에서 풀려나 도승지로 추증되었으며 인조 7년(1629년)에 여표비(閭表碑)와 비각이 건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1997년 12월 31일 문화재자료 제261호로 지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