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시대

기원전 1만년경에 빙하기가 끝나고 후빙기가 시작되면서 인간의 생활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여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고고학적으로는 구석기시대가 끝나고 과도기인 중석기시대를 거쳐 차츰 신석기시대가 전개되었다.

신석기시대는 3면의 바다를 통해 풍부한 어패류가 공급되면서 바닷가에는 조개더미(貝塚) 유적이 급격히 확산된다. 또 기후가 온난해지면서 한반도에는 온대성 낙엽활엽수림이 크게 확산되었고, 그 열매인 도토리가 신석기인의 주요 식료가 된다. 이러한 환경에 서식하는 동물들은 몸집이 작은 반면 무척 날래다. 따라서 이들을 사냥방법도 활과 화살, 함정법 등이 발달하게 된다.

집은 지름 3~6미터 크기의 원형 또는 모를 죽인 방형의 구덩이를 판 다음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린 움집이 널리 이용되었다. 집 중앙에는 돌이나 진흙으로 테를 돌린 화덕자리를 설치하였다. 후기로 가면 집터의 윤곽이 장방형으로 많아지고 맞배지붕 형태의 반움집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보통 3-4채의 움집이 모여 작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으며 마을 규모가 10여 채를 넘는 곳은 드물다.

함안의 신석기시대

함안 인근의 구석기시대 유적으로는 밀양 고례리, 진주 내촌리, 진주 집현면, 사천 이금동유적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함안지역은 아직 발굴조사를 통해 알려진 자료가 없어 구석기문화양상을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 칠원면 용산리 구릉에서 구석기 1점이 수습되었다. 석영제 타제석기로 제작형태 등에 볼 때 중기구석기시대(4만년~12만년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용도는 다른 석기를 만드는 어미돌인 몸돌(石核)로 추정된다. 또 몸돌은 그 자체로 다른 용도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용산리 출토품은 다른 물체를 자르거나 깨는 역할을 하는 찍개로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빗살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


담당부서 :
가야문화유산담당관 박물관담당
전화번호 :
( ☎ 055-580-3904~5 )
만족도 조사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시나요?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