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시대

칠원 가마실 유적 전경

기원전 2천년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요령지방의 청동기문화 등 북방문화의 영향을 받아 한반도도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넘어가게 된다. 청동기시대라고 하지만, 청동으로 만든 것은 장신구, 단추, 손칼, 검(요령식동검 또는 비파형동검), 도끼 등 일부분이다. 여전히 이 시대의 주요도구는 나무, 흙, 돌로 만든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흙으로 만든 대표적인 유물은 토기이다. 신석기시대의 토기와 비교하면 토기문양이 거의 없거나 훨씬 적어서 민무늬토기라고 부른다. 청동기시대의 토기만들기 기술의 정수는 붉은 간토기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데, 마치 자기처럼 얇게 만들어 표면을 붉게 칠하고, 다시 곱게 갈아서 윤을 내는 기술을 구사한다.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된 간석기 기술은 청동기시대가 되면 훨씬 정교해진다. 그리고 용도에 따라 다른 재질의 석재를 구해서 사용한다. 간석기에는 나무의 벌채와 가공에 쓰이는 도끼류, 권위의 상징인 무기류, 사냥에 이용되는 수렵구와 어로구, 곡식수확에 사용되는 수확구, 베를 짜는데 사용되는 가락바퀴 등 다양한 종류가 나타난다.

수렵과 어로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청동기시대를 지탱한 경제는 바로 농경이다.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조가 재배되고 있었지만 청동기시대에 들어서야 농경이 생업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쌀농사는 이 시대에 한반도로 전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청동기시대의 함안

칠원 오곡리 2호 주거지 진경

함안지역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는 가야읍에 분포하는 도항리 선사유적과 군북의 동촌리고인돌, 칠원의 오곡리, 가마실유적, 함안면의 봉성리유적 등을 들 수 있다. 유적은 주로 청동기시대의 집자리와 고인돌, 논, 고상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규모 5~6m정도로 평면형태가 방형인 것과 원형인 것으로 구분된다. 이 중 집자리의 중앙에 저장공이 설치되고 그 주위에 기둥구멍이 있는 전형적인 송국리형주거지도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주로 남방식과 개석식이 확인되었다. 이 중 개석식이 다수 조사되었는데 매장주체시설은 석관, 석곽, 토광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논은 소구획논과 계단식논으로 구분된다. 도항리·말산리고분군의 능선 아래의 곡간지대에서 모두 확인되었다.

이와 같이 함안지역의 청동기시대유적은 생활유구와 분묘유구, 생산유구로 구분할 수 있다. 출토된 유물은 주로 구순각목문, 공열문, 횡침선문이 새겨진 붉은간토기, 가락바퀴 등의 토제류와 간돌검, 돌화살촉, 숫돌, 돌도끼, 반달모양돌칼 등의 석기가 주를 이룬다. 시기는 주로 청동기시대 중기에 형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고인돌

칠원 오곡리 1호 고인돌 전경

청동기시대가 되면 정형을 갖춘 무덤이 나타난다. 바로 고인돌이다. 거대한 바위 아래에 몇 개의 바위돌이나 판석으로 떠받치게 만들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그 형태가 너무도 다양하고, 복잡하다.

넓은 판석 2매를 세우고 그 위에 거대한 돌을 올리고, 앞뒤를 막아 지상에 무덤방을 만든 것을 북방식고인돌이라 한다. 지하에 별도로 무덤방을 만들어 덮고 지상에는 둥글고 큼직한 수개의 받침돌을 두어 거대한 돌을 올린 고인돌을 남방식고인돌이라 한다. 흔히 북방식고인돌은 탁자를 닮아서 ‘탁자식’이라 하고, 남방식은 바둑판을 닮았다고 하여 ‘기반식(棋盤式)’이라 한다. 그런데 탁자식도, 바둑판식도 아닌 새로운 형식의 고인돌이 있다. 소위 ‘변형고인돌’로 불려진 것으로 남방식과 비슷하지만 받침돌 없이 바로 큰 돌(上石)을 얹는 것이다. 때문에 상석(上石)이 무덤의 덮개 역할까지 병행하는 듯이 보여 ‘개석식(蓋石式)이라고도 부른다. 오히려 우리가 알고 있는 남방식이나 북방식보다도 이러한 개석식이 수적으로 가장 많다. 지역도 남북한을 가리지 않고 있으니, 가장 보편적인 것이라고 해야겠다.

청동기시대 함안사람들의 무덤 중 현재 발굴조사된 군북 동촌리 1호, 오곡리 1호, 도항리 나호, 송정리 고인돌도 지지하는 받침돌이 없는 형태이다. 도항리 고분군의 암각화고인돌은 보고서에서 받침돌이 있은 것으로 보고되었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무덤만들기

무덤만들기는 인류가 도구를 만들고, 불을 사용하던 구석기시대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유명한 프랑스의 르 무스띠에 구석기시대 무덤에 꽃이 헌화된 예 (약 6만년전)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한국의 청원 두루봉동굴 흥수아이무덤에서 주검위로 고운 흙가루를 뿌리고, 국화꽃을 뿌린 것이 과학적 분석(꽃가루분석)에 의해 확인되어 있다.

신석기시대에도 무덤은 집단토장묘, 옹관묘, 세골장무덤 등의 다양한 무덤이 확인되었다. 남강댐 수몰지구에서는 주거지안의 구덩이에서 뼈를 담은 옹관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청동기시대의 무덤만들기는 결코 간단하지만은 않다. 먼저 주검이 묻히는 지하방을 만들기 위하여 단단한 땅을 2단, 3단으로 깊게 파내고, 무덤방을 만들어 돌이나 나무로 관을 만들고 납작한 돌로 뚜껑을 덮는데, 그것도 2번, 3번씩 덮기도 한다. 이처럼 뚜껑을 여러 번 덮는 무덤을 다중개석묘(多重蓋石墓)라고도 부르는데 봉성리 고인돌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덤만들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무덤만들기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무덤자리를 중심으로 커다란 돌을 깔아서 네모형, 또는 원형으로 묘역을 만든다. 함안의 송정리고인돌과 도항리 암각화고인돌에서 그러한 형태를 볼 수 있다. 함안의 남쪽에 위치하는 진동면에서는 지상으로 약간 솟은 원형구획의 대형무덤이 조사되었다. 상석주위에 돌을 깔아 구획하는 무덤은 때로는 연접묘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후 무덤 위에는 큰 상석을 올리게 된다.

이처럼 다양하고, 복잡하게 전개되는 무덤만들기는 모든 과정에 공동노동이 요구된다. 한 개인의 죽음에 공동체 모두가 참여하였다고 한다면, 죽음은 이들에게도 특별하고, 중대한 일로 받아들여 졌던 것이다.

함안지역은 남방식에서 변형된 개석식이 대부분으로 지금까지 약 167기가 확인되었다. 가장 많이 분포하는 지역은 군북면 동촌리로 잔존하는 상석만 27기이다.

각 지역의 유력한 고인돌집단은 이후 삼한시대에 소국을 형성하는 중심 집단으로 성장한다. 군북권의 동촌리집단과 가야권의 도항리·광정리집단은 안야국으로, 칠원권의 오곡리·야촌리·용정리집단은 칠포국으로 성장하게 된다.

청동기시대의 유적

함안 도항리 선사유적

1991년 도항리·말산리고분군의 정비사업일환으로 봉토 속에 암각화의 외면이 노출되어 있던 (현)35분이 조사되었다. 이 조사에서 가야고분 외에도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8기와 집자리 1동이 확인되었었다.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는 고인돌 상석이자 전체 고인돌의 중심제단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돌의 하부구조는 석곽형과 토광형으로 구분된다.

암각화가 새겨진 상석은 다호의 상석으로서 동심원문과 음각선, 그리고 알구멍(性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암각화에 새겨진 각종문양은 당시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물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집자리는 소위 송국리형주거지로서 청동기시대 후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집자리 형태이다. 이러한 집자리는 전기의 장방형·세장방형 집자리와 차이를 보인다. 원형의 평면형태에 집자리 중심부에 작업공이 설치되어 있고, 그 내부 또는 좌우에 기둥구멍이 있다.

작업공속에는 표면이 갈려 있는 크고 납작한 갈판(전석)의 출토가 보고되어 있다. 석기제작시의 숫돌(砥石)로 사용되었을 수도 있지만, 이 공간에서는 석기제작뿐만 아니라 곡물을 빻거나 가는 등의 제분작업도 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도항리 가호 고인돌 암각 세부

도항리 선사유적 바호 고인돌 유물출토상태

도항리 암각화고분 암각화 전경

고인돌 전경

함안 명덕고등학교 강당부지내 선사유적

도항리·말산리고분군의 서쪽구릉사면에 해당한다. 2003년 2월 ~ 3월에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결과 청동기시대의 논과 배수로 및 기둥구멍 등이 확인되어 당시 이 일대 청동기시대의 농경문화상의 일 단면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았다. 논은 작은 수로에 의해 구획된 것으로 평면 방형, 제형으로 180cm × 210cm(3.78㎡), (추정)230cm × 104cm(추정)2.39㎡이다.

배수로는 모두 3기로 구릉의 등고선 방향과 동일한 동-서향이다. 배수로 2호에 의해 1호가 일부 파괴되었다. 이들 배수로의 용도는 논의 용수를 위한 간선수로로 생각된다. 한편, 경사면을 따라 배수로 3호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보다 아래에 위치한 논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지선수로로 판단된다. 유물은 간돌검편, 반달모양돌칼편, 미완성된 돌도끼, 어망추, 가락바퀴 등과 함께 다량의 무문토기편이 출토되었다.

함안 명덕고등학교 다목적실부지내 선사유적전경

토층으로 본 논의 층위상태

도항리 명덕고등학교내 논유적

함안 명덕고등학교내 유적 배수로 유물 노출상태

함안 도시공원부지내 선사유적

함안 고인돌공원 조성부지내 선사유적전경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 의해 함안박물관 뒤편 곡간지대에 대한 조사결과 청동기시대의 논과 구덩이, 구상유구, 기둥구멍 등 약 120여기의 유구와 조선시대의 건물지 1동, 석열 1기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의 논은 이미 인근의 명덕고등학교 강당부지 내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두 유적의 차이점은 명덕고등학교 소구획 논이 확인되었고, 본 유적에서는 계단상 논이 확인된 점이다. 논의 단 차이는 3~10cm, 너비는 1.5~2m정도이다. 이외 원형과 방형, 부정형의 구덩이, 배수로 등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주로 논층과 논하층의 무문토기층에서 확인되며, 구순각목문토기편, 적색마연토기편, 돌칼편, 부리형석기, 돌괭이 등이 수습되었다.

유구노출상태

토층으로 본 논의 층위상태

칠원 가마실유적

칠원면 가마실 1호 고인돌 내부 전경

가마실유적은 칠원면 오곡리 금곡마을 576-2번지 일대의 평지에 조영되어 있다.

1997년 국립창원대학교박물관에서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청동기시대 집자리 5동과 고인돌 3기, 고상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평면형태에 따라 크게 원형과 방형으로 구분된다. 1호 집자리를 제외하면 모두 방형이다. 집자리의 규모는 5m정도로 집자리 내부에는 작업공과 4~6개의 기둥구멍이 설치되어 있다. 유물로는 구순각목문토기편을 비롯하여, 무문토기저부, 심발형토기편, 숫돌, 갈판 등이 출토되었다.

고인돌은 상부에 상석과 개석이 존재하지 않지만, 매장주체시설은 방형의 석곽으로 이루어져있다. 유물은 3기의 고인돌에서 각 1점씩의 붉은간토기가 출토되었다. 이외에도 반달모양돌칼, 돌화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칠원면 가마실유적 전경

칠원면 가마실 1호 주거지 전경

칠원면 가마실 4호 주거지 전경

칠원 오곡리유적(선사유적)

칠원면 오곡리유적 전경

유적은 칠원면 오곡리 산 25번지 일대로 마산만의 창원, 마산쪽에서 내륙의 낙동강 남지쪽으로 연결된 길목에 위치한다. 1991년, 2005년, 2008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선사시대 유구는 1991년 창원대학교 발굴 당시 확인된 것이 중심을 이루는데, 청동기시대의 집자리와 고인돌을 포함하여 가야시기의 덧널무덤, 돌덧널무덤, 돌방무덤 등 53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의 집자리는 모두 4기가 확인되었다. 평면 타원형으로 규모는 6m이상으로 비교적 큰 편이다. 집자리는 소위 송국리형주거지로서 유물은 숫돌, 석부, 석착 등의 석제품이 주를 이루며, 토기는 심발형의 무문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의 무덤은 모두 34기로서 이 중 상석을 갖춘 고인돌은 1호 고인돌 1기 뿐이다. 매장주체시설은 토광형이 가장 많고, 상부구조는 개석식이 대부분이다. 특히 토광형은 내부토층의 상태로 보아 내부에 통나무목관을 설치한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붉은간토기 및 돌칼, 돌화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칠원면 오곡리 1호 고인돌 내부 전경

칠원면 오곡리 22호 고인돌 유물노출상태

함안 봉성리유적

함안 봉성리유적 전경

이 유적은 함안면 봉성리 544-1번지 일대로서 범람원상의 자연제방에 해당되는 하상충적지이다. 2003년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서 함안-가야간 도로확장공사에 따른 구제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지역은 이미 문화유적분포지도에 표기된 봉성리지석묘군으로 오래 전부터 그 존재가 알려져 주변일대가 청동기시대 유적으로 인식되어 왔던 곳이다. 유구는 청동기시대의 집자리 1동을 비롯하여 석관묘 2기 등이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평면형태 방형으로 내부에는 별다른 시설물이 확인되지 않았다. 출토유물은 횡침선문이 새겨진 붉은간토기를 비롯하여 돌도끼, 갈돌, 미완성된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석관묘는 모두 2기이다. 이 중 1호 석관묘의 개석은 판석을 이용하여 3중으로 덮었고, 평면형태는 판석을 이용하여 조립한'ㅍ'자형이다. 유물은 돌화살촉 2점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도항리선사유적에서 마산의 진동리선사유적으로 연결되는 고인돌 루트에 포함된 지역으로서 이들 지역의 상호연관성과 성격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주었다.

칠원면 오곡리 1호 고인돌 내부 전경

칠원면 오곡리 22호 고인돌 유물노출상태

군북 동촌리 1호 고인돌

군북 동촌리 유적은 경남지역에서 고인돌이 가장 많이 분포하는 지역중 한 곳이다. 고인돌은 동촌리 남쪽의 서촌리에서 북쪽의 새동네까지 모두 27기가 곡간평야의 중심축을 따라 종렬로 분포하고 있다. 현재는 3기가 경작시의 불편을 이유로 매몰 또는 제거된 상태이다.

이 가운데 동촌정미소의 서쪽 도로에 포함된 동촌리 1호 고인돌을 2002년 6월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매장주체부는 상석의 직하를 벗어난 포석시설의 남측외연에 설치되어 있었다. 상석은 2m내외로서 작은 편이며 하부구조는 개석식으로 주변에는 포석시설이 설치되었다. 매장주체부는 혈암계의 할석을 이용한 석곽형석관을 구축하였다. 유물은 간돌검을 비롯해 돌화살촉과 대패날이 출토되었다.

비록 구제발굴에 의해 1기의 고인돌만이 조사되어 동촌리 고인돌집단의 정확한 양상과 성격을 알 순 없지만 사서에 기록된 삼한시대의 강력한 소국인 안야국과의 연결선상에서 그 실체를 밝히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동촌리 고인돌군이 형성된 군북지역의 자연지형

군북면 동촌리 1호 고인돌 축조상태

군북면 동촌리 1호 고인돌 노출상태

군북면 동촌리 1호 고인돌 상석 전경

청동기시대의 유물

토기

붉은간토기(BURNISHED RED POTTERY)

붉은간토기(BURNISHED RED POTTERY)

간돌칼(STONE DAGGER)

간돌칼(STONE DAGGER)

석기

돌괭이(HOES STONE)

간돌검, 반달돌칼, 돌끌

부리형 석기(BEAK-SHAPED, STONE)

여러가지 토제품


담당부서 :
가야문화유산담당관 박물관담당
전화번호 :
( ☎ 055-580-3904~5 )
만족도 조사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시나요?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