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시대-변한

기원전 300년경부터 AD 300년경까지의 시기로서 와질토기와 널무덤을 표식문화로 한 시대이다. 변한, 진한, 마한의 삼한은 삼국시대가 되면 가야, 신라, 백제로 성장한다. 이 시대에는 청동기의 실용성이 소멸되고 철제도구가 널리 보급된다.

철기를 이용한 철제도구는 농업생산력을 크게 증대시켰을 뿐만 아니라 철제 무기를 중심으로 각 지역에는 소국단계의 중심정치체가 발생하였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진·변한지역의 소국으로는 경주의 사로국, 김해의 구야국, 함안의 안야국을 들 수 있다.

삼한시대는 크게 전기, 중기, 후기로 구분된다. 전기에는 아직까지 청동기를 비롯한 돌도끼·돌화살촉·반달모양의 돌칼 등의 석기와 무문토기를 사용하였다. 중기가 되면 철기가 보급되고 소위 '와질토기'(瓦質土器)라 하는 경질토기가 출현한다. 와질토기란 재래의 민무늬토기에 중국식 회도(灰陶)의 기술이 가미된 것으로 태토가 보다 정선되고 이전의 노천요 대신에 온도를 더 높일 수 있는 밀폐된 평요나 등요에서 소성된 것을 말한다.

후기가 되면 철제무기가 발달하고 계급이 더욱 분화되어 지배층의 권력독점과 지역적인통합을 가져와 삼한사회의 정치력이 성장한다. 특히 무덤에 있어서는 전·중기의 널무덤보다 규모도 대형화되고 부장품도 풍부해진 덧널무덤이 출현한다.

대표적인 삼한시대의 유적으로는 함안의 도항리유적을 비롯하여 창원 다호리, 대구 달성, 팔달동, 경산 임당, 밀양 내이동, 고성 송천리, 김해 양동, 구지로, 지내동, 부원동, 부산 구서동, 노포동, 경주 조양동, 황성동, 합천 저포, 마산 성산 등이 있다.

안야국

삼한시대 주요소국의 위치

3세기 말 중국의 진수(陳壽)에 의해 편찬된 《삼국지》의 위서 동이전 한조 기사에 보면 3세기 무렵 한반도 중남부 지방에는 마한 54개국, 진한 12개국, 변진(변한) 12개국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변한의 한 나라인 안야국이 오늘날 함안지역으로 비정되고 있다. '邪'의 발음은 자전에 보면 '사'로 되어 있으나 옛날의 원래 발음은 '야'로 읽혔기 때문에 '안야국'으로 읽는 것이 일반적이다.

안야국의 형성시기는 기원전 3세기까지 소급해 볼 수 있으며, 청동기시대의 여러 취락들이 정치적 결합을 거듭하여 안야국이라는 소국(小國)으로 성립한 것이다. 소국의 내부구조는 여러 개의 읍락(邑落)과 별읍(別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읍락은 복수의 촌락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촌락은 여러 개의 작은 촌이 모인 것이다. 별읍은 소국의 제사를 담당하는 촌이었다. 소국의 우두머리인 수장은 대읍락에 거주하며 통솔하였다.

삼한의 여러 소국들 중에서 강대국의 수장들에게는 일반 소국의 수장들보다는 우대하는 존칭을 덧붙여 불렀는데, 안야국도 이에 속했다. <삼국지>의 기록으로 보아 안야국의 수장에게는 '안야축지(安邪?支)'라는 이름으로 우대하여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삼한시대의 무덤

삼한시대의 무덤은 크게 두 개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제Ⅰ기는 삼한시대 전·중기의 무덤으로 그 형태는 돌널무덤, 널무덤, 독널무덤 등이 있다. 이 중 널무덤(목관묘)은 땅을 깊게 파서 내부에 통나무나 판재로 관을 만들어 내부에 시신을 안치하고 유물을 부장한 무덤으로 삼한시대 전·중기의 대표적인 무덤이다. 부장유물은 다량의 철기와 청동기 칠기, 토기, 장신구 등이 매납된다. 주로 토기는 널의 상부나 보강토내, 철기는 보강토내와 바닥상부, 장신구는 바닥상부, 청동기는 바닥상부 및 바닥에 요갱(구덩이)을 설치하여 따로 매납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 요갱이 설치된 무덤은 상위계층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외 독널무덤은 단옹과 합구옹으로 구분되는데 주로 유아나 소아용 무덤으로 사용되었다.

제Ⅱ기는 삼한시대 후기에 새로이 출현하는 덧널무덤(목곽묘)으로서 전대 널무덤에 비해 규모가 커지며 유물을 부장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만들어진다. 즉, 시신을 안치한 널과 유물을 부장하는 덧널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내부에 널 없이 전체를 덧널만으로 설치한 것도 있다.

영남지역의 덧널무덤은 2세기 중·후엽에 후기와질토기문화를 중심으로 발생하였다. 중국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에서 무덤이 전파되었다는 설과 북방민족인 선비계의 무덤이 전파되었다는 설로 크게 압축될 수 있다. 발생 초기에는 주로 방형의 것이 많으며, 시기가 늦을수록 장방형과 세장방형으로 변한다. 3세기 후반부터는 주·부곽으로 구성된 소위 '김해형목곽묘'등의 지역색을 가진 형태가 등장한다. 함안지역의 경우, 서부경남지역과 마찬가지로 3세기 대의 덧널무덤과 후기와질토기가 거의 확인되지 않아 당시 무덤의 연구를 통한 사회상을 밝히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도항리·말산리유적

함안지역에서 유일하게 확인된 삼한시대 유적이다. 주로 말이산고분군의 북쪽구릉 능선사면에 조영되어있으며, 일부는 후대의 덧널무덤(목곽묘)과 돌덧널무덤(석곽묘) 등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1992년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와 1998년 경남고고학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33기의 널무덤(목관묘), 2기의 독널무덤(옹관묘), 9기의 덧널무덤(목곽묘)이 확인되었다.

이 중 널무덤은 규모 250~290cm 정도의 장타원형으로 등고선방향과 거의 직교하게 설치되어있다. 유물은 피장자의 신변주위에는 주로 쇠칼이 매납되었고, 보강토 상부 및 내부에는 소뿔모양손잡이항아리와 주머니단지를 비롯하여, 쇠화살촉, 쇠도끼 등이 매납되었다. 시기는 1~2세기 대가 중심을 이룬다.

도항리 <경>52호

도항리 52호 (독널무덤)전경

경남고고학연구소에서 조사한 독널무덤으로 묘광의 잔존규모는 길이 144㎝, 너비 63㎝, 깊이 32㎝이다. 주옹과 뚜껑이 함께 있는 합구옹으로 출토된 유물은 없으며, 유아나 소아의 시신을 안치하였을 것으로 판단되나, 당시 동남아지역에서 유행한 세골장의 장제가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성인용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도항리 <경>24호

도항리 <경>24호

경남고고학연구소에서 조사한 널무덤으로 묘광 벽에 나타난 굴지구흔은 폭 8㎝정도이며 끝부분이 각을 이루며 묘광 벽을 따라 회색 점질토가 3cm 정도의 두께로 확인되는데 묘광 축조 시에 의도적으로 발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목관 내부에서는 남단벽에서 유리와 수정으로 된 경식과 소형옹이, 이 보다 약간 중앙으로 내려온 곳에서 통형 목기 1점이, 서장벽 중앙부에서 철부가 출토되었다. 서장벽 보강토 이면에는 단경호 1점이 출토되었으며 서장벽과 남단벽이 만나는 곳에서 목기 8점분 이상이 출토되었다.

남단벽 보강토 이면에서 목기 1점이 출토되었고 동장벽 보강토 이면에서는 다량의 유물이 격납되어 있었는데 동남쪽 귀퉁이에서부터 목기가 있었고 동장벽의 중앙부쪽에서 장경호 3점이 출토되었다. 목기의 형태는 직경 34㎝정도의 원형의 쟁반형태 1점과 통형, 호형, 완형 등 다양한 형태의 것이 출토되었다. 부식이 심한상태이며 표면에 칠해진 것으로 추정되는 칠피만이 두께 약 0.5㎝정도로 잔존한다.

도항리 <경>25호

도항리 <경>25호

경남고고학연구소에서 조사한 널무덤이다. 목관 내부에는 유물이 부장되지 않았으며 동장벽 보강토 이면에서 장경호와 직구호 각 1점, 목기 7점이 출토되었고, 남단벽 보강토 이면에서는 소형옹 1점이 출토되었다.

목관과 보강토와의 경계가 각이 지는 것이 아니어서 이 유구에 사용된 관의 종류는 통나무관일 가능성이 높다. 서단벽쪽 매장주체부(목관)가 넓으며 이 부분의 묘광 바닥은 약간 패여 있으며 관의 규모는 174㎝ × 31㎝ 정도로 추정된다.

삼한시대의 토기

삼한시대의 토기는 크게 시기에 따라 청동기시대부터 출현한 무문토기와 새로운 제도술에 의해 만들어진 와질토기로 구분된다.

무문토기는 주로 전·중기에 걸쳐 사용된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토기로 원형점토대토기를 들 수 있다. 원형점토대토기란 아가리에 점토띠를 덧댄 것으로 주로 아가리의 단면이 원형→삼각형으로 변화되어간다. 대표적인 기종으로서, 전기는 소형옹과 검은간토기, 두형토기가 있고 중기에는 옹, 발, 시루, 굽다리접시 등이 있다.

한편 중기가 되면, 무문토기와는 달리 밀폐된 실요에서 환원염으로 소성한 와질토기가 출현한다. 대표적인 기종으로는 소뿔모양손잡이항아리, 주머니단지, 짧은목항아리 등이 있다. 후기가 되면, 무문토기는 완전히 소멸하고 와질토기가 주류를 이룬다. 기종면에서도 전기와질토기에 비해 전혀 다른 새로운 형식의 후기와질토기가 등장한다. 대표적인기종으로는 화로모양토기, 굽다리항아리, 짧은목항아리, 굽다리접시, 작은단지 등이 있다. 특히 굽다리항아리는 그 모양이 '亞 자형'이라 하여 亞자형토기라고도 불린다. 초기에는 아가리가 넓고 대각이 좁은 형태에서 시기가 늦어지면 아가리가 좁고 대각이 넓어지는 형태로 변한다. 또한 뚜껑은 초기에는 없다가 천정이 낮은 접시형에서 천정이 깊은 모자형으로 변한다. 이러한 후기와질토기의 새로운 기종은 서진 또는 북방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주머니모양단지

소뿔모양손잡이항아리와 함께 1~3세기 대의 대표적인 와질토기로서 무문토기문화를 기반으로 한(漢)나라의 토기만들기 제작기술을 받아들여 만든 남부지역 특유의 토기이다. 삼국시대 도질토기가 1000℃이상에서 소성되는 것과 달리 600~800℃ 정도의 저화도에서 소성되어 토기의 굳기가 매우 약한편이다. 복주머니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주머니모양단지라고 부르는데, 동체부가 둥근 것에서 각진 것으로, 아가리가 점토대 구연에서 단순구연이었다가 외반하는 것으로 바뀐다.

주머니모양단지 사진1

주머니모양단지 사진2

소뿔모양손잡이항아리(組合牛角形把手附壺)

도항리 <경>25호

주머니모양단지와 함께 1~3세기 대의 대표적인 와질토기로서 무문토기문화를 기반으로 한(漢)나라의 토기만들기 제작기술을 받아들여 만든 남부지역 특유의 토기이다. 삼국시대 도질토기가 1000℃이상에서 소성되는 것과 달리 600~800℃ 정도의 저화도에서 소성되어 토기의 굳기가 매우 약한편이다. 손잡이가 소뿔모양을 닮았다 하여 소뿔모양손잡이 항아리라고 부르는데, 조합우각형파수부호(組合牛角形把手附壺)라고 부르는 이유는 손잡이를 만들 때 두 가닥을 붙여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굽다리가 있는 바닥에서 평평한 바닥으로, 또 둥근 바닥으로 변하며, 구경부는 직선에서 외반형으로, 동체부는 둥근형에서 장란형으로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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