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호분은 말이산고분군의 주능선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가지능선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봉분의 규모는 길이 26m, 너비 15m로 인접한 고분들에 비해 가장 큰 것으로 보아 아라가야 최상위층에 속한 인물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말이산고분군에 조성되는 고분은 시기에 따라 매장주체부의 성격이 변하는데, 4~5세기 전반에는 목곽묘이고,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중엽까지는 수혈식석곽묘가 축조되었습니다.
봉분은 경사진 면에 축조가 되었습니다. 동고서저의 지형조건 상 지형을 평탄화 시킨 다음 매장주체부를 구축하였는데, 동서 방향의 타원형 묘역으로 조성하였습니다. 봉분 성토 시 경사가 심한 남쪽은 수평으로 1.1m를 성토하고, 완만한 서쪽은 점토로 반복 성토함으로써 지형상의 약점을 보완하였습니다.
말이산고분군은 매장주체부가 단독으로 조성되고 별도의 순장곽이나 배장곽을 조성하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21호분은 석곽 내부에 유물부장공간, 주피장자공간, 순장자공간으로 3분할되어 있습니다. 주피장자공간에는 바닥에 할석을 깔고 피장자의 목관을 안치하고, 유물부장공간은 석곽의 서쪽에 위치하며 순장자공간에는 순장자 2명을 안치하였습니다.
21호분은 심하게 도굴되어 남아있는 유물이 거의 없습니다. 특히 피장자 공간에 부장된 유물이 대부분 도굴되었습니다. 철부·철정·철모·재갈·교구 등이 일부 수습되었고, 남장벽에 찰갑이 깔려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무기류와 마구류, 장신구류는 피장자 주위에 부장되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순장자 공간에서는 철겸 1점이 출토되었고, 유물부장공간에서는 토기류가 주로 출토되었습니다. 개배, 고배, 발형기대, 장경호, 대호 등이 혼재되어 출토되었다.
특히 찰갑은 석곽 중앙부 남단벽에 연접하여 출토되었습니다. 찰갑이 놓인 공간에는 시상석이 깔려 있지 않아 찰갑을 놓기 위한 공간을 따로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석곽 중앙부에서 찰갑편이 다수 출토된 것으로 보아 1領의 찰갑이 부장되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